태그 : 2-26사건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1 2

일본 황도파 청년장교들의 어리석음이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육군 황도파가 이른바 쇼와유신을 통해서, 일본이 소련과 전쟁하여, 만몽 문제를 군사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치자.이를 국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해군을 설득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의 해군 주류는 함대파로, 그들은 미국과의 전쟁도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육군의 황도파의 입장에서, 소련과 전쟁하여 대륙으로 치...

와타나베,육군의 "정신만능"을 비판한 군인의 끝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제1차 세계대전을 유럽 현지에서 목격한 일부 일본 육군 무관들은 일본의 개혁을 주장했다. 1917년 네덜란드 주재 무관이었던 와다나베 조타로도 그 중 한 명이었다.와타나베 죠타로(渡辺錠太郎)는 “현 전투방법은 지나친 공격정신의 오용에 따라 무모한 돌격의 정신만능주의에서 오는 육탄전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만약 2월 26일 사건이 성공했다면?"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육군 수뇌부에서 황도파가 제거된 것은 일본의 대륙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1936년 2월 26일 사건이 성공했다면, 37년의 중일전쟁은 없었을 것이란 주장이 존재한다. 사건을 주도한 황도파는 러시아와의 전쟁에 몰두했다. 따라서 쇼와유신에 성공한 황도파는 러시아와의 대결을 위해서, 중국과의 전쟁을 피하려...

[45년]스즈키 간타로의 한마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영화 일본패망하루전 (2015)를 보면 다음 장면이 나온다.1945년 4월, 스즈키 간타로는 천황의 총리 지명을 받았다. 귀가한 후 스즈키는 소식을 아내에게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스즈키- "또 총알을 맞을 것 같아."아내- "4발을 맞아도 멀쩡하니, 다음에도 걱정 없어요."아들- "머리,심장,어깨,사타구니...

[36년] 2-26 사건 당시의 도쿄 지도?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산노호텔2-26 사건 당시 반란군의 본부가 있었다.호텔 옥상에 반란군의 깃발이 펄럭였다.깃발에는"존황토간 尊皇討奸 Sonnō Tōkan"  “Revere the Emperor—Eliminate the Evils" 즉 천황을 받들어, 사악한 무리들을 처단하자! 란 구호가 있었다. 

"2-26 사건과 태평양전쟁의 기원?"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가타야마 모리히데, <미완의 파시즘>을 읽다가,황도파의 중심인물 오바타 도시로의 전쟁사상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기타야마에 따르면, 아라키 사다오와 오바타의 황도파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갖지 못한 나라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당분...

[2-26사건]나카하시 중위의 유언장...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6년의 2월 26일 사건의 가담자들은 특별 군사법정에서 단심 재판을 받았다. 항소는 불가능했다.7월 5일, 사형수 나카하시 중위는 유언장을 작성했다.“각 시대는 다음 시대의 선구자들을 처형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다. 일본의 니시렌교 신자들은 생명을 바쳤다. 중세 유럽에서 과...

[36년]혁명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인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6년의 2월 26일 사건에서 러시아 공산 혁명은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일본 육군의 반란세력은 황도파 내각을 수립한다는 것 이외의 다른 구체적인 혁명 계획을 가지지 못했다.그들은 쇼와유신 단행을 위한 개혁 내각을 위한 총리로 황도파의 대부, 마자키 진자부로를 원했다. 하지만, 그것은 최종 단계의 일이었...

60년대 일본 학생운동에 대한 쇼와 청년장교의 감상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유럽 파시즘과 일본의 그것의 차이는 무엇인가?청년장교들이 결행한 2-26사건이 유럽의 파시즘 운동과 차이를 가진다면, 그것은 "대중"과 결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유럽 파시즘이 대중을 동원한 데 반해서, 2-26의 일본 청년장교 반란은 대중과 결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일본에서 시...

[36년]스즈키 간타로의 구사일생?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6년 2월 26일 사건에서 천황의 시종장 스즈키 간타로(鈴木貫太郎)는 구사일생으로 화를 피했다.36일 새벽 일본 육군 제1사단 3연대의 안도 데루조(安藤輝三) 대위가 지휘하는 병력 150명이 스즈키의 집에 도착했다. 안의 경비는 저항을 포기했고, 반란군은 희생양을 찾아 나섰다. 69세의 노인 스즈키 ...
1 2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