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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막는 것은 왜 어려운가?"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하나 혹은 하나 이상의 경쟁,적대 세력에 대한 외교정책 수립의 문제에서 그 세력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성격에는 제국주의와 현상유지 세력이 있다.히틀러의 경우, 1933-1938년 뮌헨회담까지 현상유지 세력으로 간주될 여지가 있었고, 유화정책은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1939년 ...

"유화정책이 정당한 경우는 언제인가?"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한스 모겐소는 국가간의 정치에서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역사적 대참사였지만, 그렇다고 유화정책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유화정책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기 이전에, 상대국 혹은 적국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적의 성격유형은 제국주의와 현상유지가 있다. 제국주의가 팽창을 통한 정복을 ...

키신저,"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히틀러 독일의 군사 강대국으로의 부상에 대해서]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재무장이 진행되도록 방치했던 것은 문자 그대로, 그들은 달리 어떻게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집단안보와 국제연맹을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프랑스는 너무나 의기소침해서, 자신의 예감에 따라 스스로 행동에 나설 수 없었다 : 프랑스...

메테르니히, 혁명세력과의 평화는 가능한가?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키신저의 박사논문에 따르면, 메테르니히의 선견지명이란 프랑스가 혁명세력임을 분명히 했고, 혁명세력과는 어떠한 평화도 가능하지 않다는 원칙을 일찌기 견지했다는 점에 있었다. ; 그러나 메테르니히가 18세기 귀족으로서 얼마나 전형적이었는지와는 무관하게, 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그들의 희망 섞인 평가에 편...

남중국해 갈등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사드,남중국해 그리고 모택동...남중국해와 독도...만약 프랭클린 루스벨트 였다면....해상제국인 미국이 바다에서의 자유를 위협하는 적대세력을 상대하는 원칙이 있을까?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면,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도발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전통적으로 육상제국인 중국이 해상에서도 육상제국적 방법으로 팽창을 시도하다가 해상제국 미국과 그의 ...

테일러,"히틀러의 외교정책은 잘못이 없었다."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영국 역사가 테일러의 제2차세계대전의 기원은 이 전쟁의 기원에 대한 모든 진지한 연구가 출발해야 할 학문적 업적임이 분명하다.하지만, 이 책은 히틀러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 만큼이나, 영국 현실주의의 한계도 보여준다. 특히 1940년대 영국 현실주의가 왜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주었는지 이해하는데 도...

E.H.카, 뮌헨협정에 대해서...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이후에 삭제되었지만 <20년의 위기> 초판본에는 있던 한 문단에서, 카는 뮌헨협정을 국제문제의 평화적 변화의 사례라고 평가했다고 한다.카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1938년 9월 29일에 뮌헨협정의 타결로 귀결된 협상은 중요한 국제문제가 평화적 변화 절차에 의해 해결된 최근의 가장 좋은 교섭이었다. 힘이라는...

조지 오웰, 정치적 현실주의의 문제는?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스스로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논리의 극단이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즉 현실주의가 불쾌한 현실을 수동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패배주의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뮌헨협정으로 대표되는 유화정책이라는 오류는 현실주의의 약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네빌 체임벌린과...

E.H.카와 히틀러의 라인란트 재점령...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E.H.카는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서양 역사가일 것이다. 그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아직도 모든 역사교양 수업의 바이블이다. 그동안 카를 넘어서자는 구호가 난무했지만, 여전히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는 책이 등장하지 못한 것이 대한민국 역사철학의 우울한 수준을 말해준다.그런 E.H.카가 193...

"그들은 어떻게 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가?"

키신저의 경고..."어떻게 전쟁을 방지할 것인가?"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초미의 관심사는 어떻게 전쟁을 방지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런 관심사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1928년 8월의 부전조약, 켈로그-브리앙 조약이었다. 부전 조약의 1조에서는 제1조에서는 각 국가가 국민의 이름으로 전쟁포기를 선언함을, 제2조에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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