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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나치 독일 부상에 대한 스탈린의 인식은?

키신저의 경고...1935년 유럽에서 독일과 이탈리아가 위협적으로 부상했을때, 이에 대한 스탈린의 인식은 어떤 것이었는가?1935년 7-8월의 코민테른 제7차 대회는 이 문제를 토론했다. 코민테른은 파시즘은 민주 民主를 탈취하고 그동안 인류가 쟁취해 낸 위대한 사회적 권리 및 개념적 성과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위원장 드미트...

조지 캐넌,"소련의 위협은 나치 독일과 어떻게 다른가?"

키신저의 경고...냉전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은 1946년 2월 22일, 소련 주재 대리 대사 조지 케넌, 긴 전보 발송이었다.이 전보를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미국의 봉쇄정책이다. 봉쇄정책은 소련에 대한 예방전쟁과 유화정책 모두를 지양하고자 했다. 캐넌은 나치 독일의 위협에 대해서는 전쟁이 필연적이었지만, 소련의 위협은 전쟁으로 맞설 필요는 ...

1939년 독소불가침 조약과 모택동

장개석,모택동 그리고 스탈린!모택동은 1939년 8월의 독소불가침 조약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알아보아야 한다.중국공산당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은 다음 사실에서 확인 가능하다.1935년, 소련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파시즘에 의해 위협을 당하자, 중국공산당은 민족주의자들과의 통일전선 정책을 수용, 아시...

독소불가침 조약의 논리는?

키신저의 경고...다극체제에서의 책임전가1939년8월 23일독일-소련 불가침조약- 강대국이 여럿 존재하는 국제체제 속에서는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팽창주의 국가를 견제하는데 드는 비용을 감수하게끔 만들려는 동기가 존재할 수 있다. 1930년대에 스탈린은 이러한 상황에 적합한 외교적 게임,즉 가능한 한 프랑스와 영국이 나치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서도록 하기 ...

히틀러, 냉전을 예언하다? 1945년 4월

키신저의 경고...1945년 4월 2일히틀러가 마르틴 보르만에게 한 발언: 제3제국이 패하고 아시아,아프리카,남미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등장하는 사이에 세계에는 동등한 힘을 기초로 서로 대항할 수 있는 두 강대국, 즉 미국과 소련만이 존재할 것이다. 역사 법칙에 따라 이 두 거대 국가는 군사적으로 혹은 단순히 경제적,이데올로기적으로 자신의 힘을 시험할 것...

"1936년, 히틀러는 여전히 정상인처럼 보였다."

독일의 라인란트 재점령-1936년 3월 7일<라인란트>1936년 3월 7일, 히틀러의 독일이 라인란트를 재점령했다. 라인란트 재점령을 통해서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과 로카르노 조약을 동시에 위반하면서, 라인란트에 독일군을 주둔시켰다. 라인란트는 독일서부에 라인강을 따라 있는, 비무장지대였다. 베르사유 조약과 1925년의 로카르노 조약...

"히틀러를 막는 것은 왜 어려운가?"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하나 혹은 하나 이상의 경쟁,적대 세력에 대한 외교정책 수립의 문제에서 그 세력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성격에는 제국주의와 현상유지 세력이 있다.히틀러의 경우, 1933-1938년 뮌헨회담까지 현상유지 세력으로 간주될 여지가 있었고, 유화정책은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1939년 ...

"유화정책이 정당한 경우는 언제인가?"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한스 모겐소는 국가간의 정치에서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역사적 대참사였지만, 그렇다고 유화정책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유화정책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기 이전에, 상대국 혹은 적국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적의 성격유형은 제국주의와 현상유지가 있다. 제국주의가 팽창을 통한 정복을 ...

키신저,"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히틀러 독일의 군사 강대국으로의 부상에 대해서]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재무장이 진행되도록 방치했던 것은 문자 그대로, 그들은 달리 어떻게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집단안보와 국제연맹을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프랑스는 너무나 의기소침해서, 자신의 예감에 따라 스스로 행동에 나설 수 없었다 : 프랑스...

메테르니히, 혁명세력과의 평화는 가능한가?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키신저의 박사논문에 따르면, 메테르니히의 선견지명이란 프랑스가 혁명세력임을 분명히 했고, 혁명세력과는 어떠한 평화도 가능하지 않다는 원칙을 일찌기 견지했다는 점에 있었다. ; 그러나 메테르니히가 18세기 귀족으로서 얼마나 전형적이었는지와는 무관하게, 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그들의 희망 섞인 평가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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