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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일본 육군에게 화력이 필요없는 이유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제1차세계대전을 계기로 서구열강 군대가 포병 중심의 화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데 반해서, 일본 육군은 화력을 경시하고, 포병 전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일본이 화력 대신 강조한 것은 정신력이었다. 이처럼 일본 육군은 보병전술의 근간을 바꾸지 못한 채, 러일전쟁 이후 신봉해온 ‘일본 고유의 전술’인 백병돌격을 ...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포병(화력)을 무시했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러일전쟁 이후 일본육군을 돌격주의를 강조하며, 화력주의를 경시했다. 그 희생양은 일본포병이었다. 1920년대 일본 육군은 우가키 군축을 계기로, 사단의 수를 줄이는 대신에 군의 기계화,근대화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는 제1차세계대전의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무기와 장비를 적당히 교체하는 선에 그쳤다....

1919년,일본 육군, 정신력만으로 싸울 수 없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제1차세계대전은 일본 육군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러일전쟁 식으로 미래의 전쟁을 싸우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1919년 12월,육군 임시군사조사위원회 보고서제1차 세계대전의두 번째 충격은 ‘황군(皇軍)’의 ‘정신적 우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을 조사,...

1917년 각국의 포탄 생산 능력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17년 4월 기준각국의 일일 포탄 생산량 추정,러시아 11만 발, 오스트리아 16만 발, 영국 29만 발, 프랑스 31만 발, 독일 44만 발, 일본은 한 달에 10만 발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군수 산업의 생산력에서 일본은 서구열강에 크게 뒤쳐졌다. 야마다 아키라, 일본 군비확장의 역사, ...

일본 육군과 독일의 화력주의?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 육군의 전력의 핵심은 '화력'인지 아니면 '백병돌격'인지의 문제는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러일전쟁 이전 일본 육군은 독일식 화력주의를 군사사상으로 채택하고 있었다. 구(舊) 무사계급 출신인 일본 육군의 직업군인들도 세이난(西南}전쟁, 청일전쟁을 통해 보병의 소총 화력과 포병의 지원 사격이 총검과 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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