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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캐넌, 비스마르크는 독일 민족주의자였나?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조지 캐넌엄밀히 말하자면, 비스마르크는 독일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왕실의 충복이었다. 처음에는 프로이센 왕실 그리고 이후에는 새로운 독일 제국. 그에게 프로이센이 독일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가 군주의 의견에 강하게 반대했을 때, 그는 왕국의 진정한 이익이라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서 그렇게 ...

1871년, 알자스-로렌과 러시아?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그림- 알베르 베타니에의 검은 점 프랑스 지도 위의 검은 점이 바로 알자스-로렌이다. 프랑스 학생이 빼앗긴 땅 알자스-로렌에 대해 교육받고 있다. 1871년 이래 독일에 대한 복수가 1914년까지 프랑스의 국가 목표가 되었다.>1871년 5월 18일, 프로이센-프랑스 전...

보불전쟁의 스당 전투와 일본군?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1870년 보불전쟁의 스당전투는 프로이센군이 프랑스군을 격파한 결정적 전투였다.역사가 페인에 따르면, 스당전투가 일본의 현대전 이해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보불전쟁 승리 직후,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이 독일을 방문했다. 사절단원들은 특히 스당 전투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일본 육군의 교리가 된 "단...

빌헬름1세, 비스마르크에 대해서...

비스마르크, "혁명적 시대의 보수주의자!"마거릿 맥밀런에 따르면, 빌헬름1세는 평범하고 점잖은 인물로, 특별히 똑똑하거나 식견을 갖추지 않았다고 한다.이런 보통사람이 비스마르크 같은 거인을 상대하기는 벅찼을 것이다. 비스마르크가 거물이라는 것은 그의 요강만 봐도 알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비스마르크의 집을 방문한 두 사람이 그의 요강이 보통 것보다...

군대가 주권자를 만든다" exercitus facit imperatorem

고대 로마의 격언이다. 군대가 고대 로마의 근위병의 방법에 따라 지배자를 선출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아니라, 때로 은폐적인 방법으로 국가의 주권이 무장한 군대의 정신과 의지에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이 고대 로마의 격언은 황제이념이 되었고, 근대에 이르러 특히 군국주의 프로이센 국가의 특징이 되었다.비스마르크가 젊은 빌헬름 2세에게 다음과 같이...

나폴레옹3세가 덴마크전쟁에 개입하지 않은 이유?

비스마르크, "혁명적 시대의 보수주의자!"덴마크 전쟁은 1864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대상으로 덴마크와 프로이센,오스트리아가 전쟁을 벌인 것이다.  프랑스의 관점에서 보면, 덴마크 전쟁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힘을 모아 덴마크를 공격, 결국 두 공국을 넘겨받은 것으로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사건이었다.이는 1815년 빈 조약의 관련 규정,즉 슐레...

"사도바 전투 이후 비스마르크를 자제하게 만든 것은?"

"비스마르크는 독일을 통일하지 않았다?"[독일][독일 통일][비스마르크][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1866년][사도바 전투]비스마르크가 사도바 전투 이후 회군을 결심한 이유는?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 중 1866년 7월 3일의 사도바 전투에서 프로이센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이 1866년에 오...

1871년 독일통일에 대한 영국과 러시아의 입장은?

디즈레일리,"독일 통일에 대해서..."[독일][독일 통일][독일 제2제국][비스마르크]독일통일에 대한 영국과 러시아의 입장은?미어샤이머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1864년부터 1870년까지 영국과 러시아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이 유럽의 심장부에서 영토를 획득하고, 프로이센 보다 강력한 독일 제2제국이 탄생하는 것을 용인했다. 이에 대한 영국의 입...

토마스 칼라일, 보불전쟁에서의 프로이센 승리에 대해서...

디즈레일리,"독일 통일에 대해서..."[보불전쟁]"고상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현명하고 경건하면서 진실성이 큰 독일인들이 드디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독일이 마침내 유럽 대륙의 여왕 행세를 하면서, 겉치장만을 하고, 거만하고 논쟁이나 좋아하고 손짓이 많고 신경과민한 프랑스인들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이 명백한 사실이야 말로 내 생애에서...

[만평] "평화를 위한 한마디"

비스마르크의 프랑스정책...[유럽외교사][19세기][독불관계]1830-1890년 유럽외교사의 쟁점과 관련된 만평이다.제목은 "평화를 위한 한마디"이다.등장인물들은 각각 좌에서 우로, 프로이센,유럽,프랑스를 상징하고 있다.프로이센이 프랑스의 파리를 위협하는 것을 유럽이 제지하고 있다.평화를 위해, 유럽이 프로이센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당신은 그녀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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