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친위대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1 2

가스실 앞에서 나치 친위대원의 친절?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친절한" 폭력은 존재할까?홀로코스트를 체험한 타데우시 보로프스키의 회고록 제목은<신사 숙녀 여러분,가스실은 이쪽입니다!>라 한다.홀로코스트 관련 다큐를 보면,나치들이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기 까지,가장 주의를 기울인 것은, 이들이 가스실로 가서 죽는다는 것을 철저히 감추는 것이었다고 한다.불필요한 혼란을 ...

"나치는 어떻게 학살 방법을 발전 시켰을까?"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나치 독일][홀로코스트]"나치 대량학살 수단 진화의 동력은?"홀로코스트의 역사를 보면, 나치의 유대인 박해정책이 급진화된 것은 1941년 6월 22일 독소전쟁의 개막과 더불어서 였다.처음에는 친위대 산하의 학살 전담부태인 살인특무부대 Einsatzgruppen가 투입되어, 1941년 6월부터 1942년 4...

힘러, 유대인문제에 대해서...1938년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나치 독일][제3제국][홀로코스트][유대인 문제][친위대][하인리히 힘러][수정의 밤]1938년 11월 9일독일내 유대인에 대한 나치 독일의 집단적 박해 사건이었던 수정의 밤 (독일어: Kristallnacht)을 기해서,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가 SS집단지도자/SS중장 Gruppenführer들을 대상으...

힘러와 유대인문제 최종해결 그리고 모순...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홀로코스트][하인리히 힘러][친위대][유대인문제][최종해결]1942년초 유대인문제 최종해결이 나치의 유대인 정책이 되고, 그 정책실현의 중심에는 하인리히 힘러의 친위대가 있었다. 그 정책목표는 유럽 유대인의 절멸이었다. 수백만명에 달하는 유럽 유대인을 총살로 제거할 수는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나...

[에스토니아]"나치 친위대가 자유의 전사들이었다?"

[에스토니아][제2차세계대전][독소전쟁]"나치 친위대가 자유의 영웅들인가?"2012년 1월 11일 - <프레스유럽> 보도"나치 친위대의 신성화"시도에 대해서 독일 일간지 <타게스차이퉁>지가 신문의 일면에 나치 친위대 수장, 하인리히 힘러의 사진을 소개하면서 분노를 표시했다. 사진 속의 힘러는 1943년 10월에 에스토니아인으로 구성...

[자료] 헬무트 크노헨 Helmut Knochen

 헬무트 크노헨헬무트 크노헨은 (1910년 3월 14일 - 2003년 4월 4일) 제2차세계대전 동안, 나치 친위대 스탄다르텐퓨러 (대령)신분으로, 프랑스에서 보안경찰 과 보안대 책임자였다. 그는 독일 점령당국의 반유대주의 정책, 특히 나치강제수용소로의 프랑스 유대인 강제이송에 깊이 간여했고, 수천명의 프랑스 레지스탕스 처형에 책임이 있다.He...

나치가 소련보다 더 관용적 이었을까?

 나치가 소련보다 더 관용적?기록에 따르면, 독일 나치 제3제국의 친위대 제국총통, 하인리히 힘러는 1941년 3월 1일에 처음으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방문했다. 이 방문에서, 힘러는 이제 아우슈비츠가 더이상 만명 만을 수용해서는 안되고, 3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확장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실레지아 관구장, 프리츠 브라흐트 ...

[홀로코스트]수정의 밤,친위대가 개입을 자제한 이유는?

수정의 밤이 지나간 이후, 베를린의 약탈당한 유대인 상점에서웃는 행인도 보이고, 당혹스럽게 바라보는 행인도 있었다.이 폭력이 춤을 추었던 밤, 나치 폭도들이 얼마나 많은 유리창을 부수었던지,역사에서는 이 밤을 "수정의 밤"이라 부른다.이 사진의 왼쪽 전경에서, 미소짓고 있는 독일 여성이 특히 사악해 보인다!! 독일의 <수정의 밤>을 보도하고 ...

이르마 그레제,영화 나치 일자 시리즈에 영감을 준 여성 전범.

참고 - 1974년 영화 <일자,나치 친위대의 색녀>는,나치 강제수용소 여간수들의 각종 만행, 특히 성적 난잡함을 그린 영화다.이르마 그레제 1923년 10월 7일 – 1945년 12월 13일 젊고 아름다웠지만 또한 악명 높은 여간수 였던 그녀는 2년동안 친위대 요양소에서 보조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1942년에 레벤스브룩 ...

아우슈비츠 소장, 루돌프 회스의 증언, 가스에 대해...

"(친위대 총사령관 힘러 와 나는) 가스 이야기만 나눈 것 같다.왜냐하면 아무래도 총살로는 예상되는 엄청난 숫자를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했고,여자와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이 일을 집행하는 친위대 대원들에게도 너무나 큰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아이히만은 지금까지 동부에서 실행한 것처럼,화물차에 가스를 주입하여 죽이는 방법을 내게 알려주었다.그러나, 그...
1 2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