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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체임벌린을 고발한 카토의 죄인 출간.

1940년, 체임벌린을 고발한 카토의 죄인 출간.유화정책의 연구사의 출발은 1940년의 카토라는 필명의 죄인 출간이었다. Cato’s Guilty Men in 1940<죄인>은 체임벌린과 유화론자들에게 1940년 여름에 영국이 직면한 위기의 책임을 물었다. 그들은 범죄적인 새로운 나치 전쟁세력의 목적에 둔감했고, 히틀러의 의도를 일관되게 오독...

영국의 유화정책과 극동의 일본?

영국의 유화정책과 극동의 일본?유화정책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왜 영국이 조기에 독일에 대한 예방전쟁을 하지 못했는지에 관련있다. preventive use of force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육군의 예산이 체계적으로 삭감된 것을 고려할 때, 독일과의 대치가 영국의 제국의 위험에 처하게 만들것이란 공포가 존재했다. 또한 세계사적...

체임벌린의 유화정책과 영국대중?

체임벌린의 유화정책과 영국대중?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주권자이다. 국민의 여론형성을 통해서 정부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국민이 틀린 생각을 가질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유화정책의 역사에서 영국 대중은 다음의 역할을 했다. 영국 대중의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에서 진저리쳤으며, 매우 평화적이었고, 또 한번의 전쟁을 치를 의지가 없었다. 램...

네빌 체임벌린 정부의 군비증강?

네빌 체임벌린 정부의 군비증강?기존의 체임벌린 연구는 그를 "역사의 죄인"으로 평가하는 연구가 대세였다.하지만 스티븐 로벨에 따르면, 체임벌린은 영국에 대한 안보 위협, 특히 독일,일본,이탈리아가 제기하는 3면전쟁의 위협에 대해서 표적적 균형대응으로 대처했다. 3국이 제기하는 위협 전반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중에서 특히 영국에게 위협인 요인에 대해서 ...

루스벨트와 체임벌린

루스벨트와 체임벌린1938년의 유화정책의 해였다.3월 11일루스벨트가 프랑스대사에게그는 체임벌린을 런던 금융가 사람으로 묘사하면서, 독재자와 사업 거래를 하고자 희망하면서 프랑스를 배신하기로 결정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Bouverie, Appeasement- Chamberlain, Hitler, Churchill, 248.1938년 3월에 루스...

[우크라이나]"체임벌린은 없지만, 윈스턴 처칠도 없다!"

[우크라이나]"체임벌린은 없지만, 윈스턴 처칠도 없다!" "이번 이야기에 체임벌린은 없다."하지만 처칠도 없다. 우크라이나는 홀로 싸울 것이다.앤 애플바움 Anne Applebaum- 애플바움은 유대계 미국인이다. 굴락의 역사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역자주 : 푸틴의 홍차 배송자 명단에 올랐을 것이다. ㅠㅠ]디 애틀랜틱 기고문. The...

"유화정책의 바보들인가, 최고의 인재들인가?"

"유화정책의 바보들인가, 최고의 인재들인가?"체임벌린과 유화정책에 대한 한국의 전반적인 부정적 인식 때문에, 체임벌린을 1938년 세계 최고의 바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하지만, 체임벌린과 그 측근들은 학력으로 보자면, 캐임블리지,옥스퍼드 등 당시 영국이 자랑하는 명문교육을 받은 수재급 인재들이었다. 20세기 역사에서 이러한 당대 최고의 인...

1939년의 체임벌린, 소련을 믿을 수 없는 이유?

1939년의 체임벌린, 소련을 믿을 수 없는 이유?히틀러의 독일이 뮌헨 협정을 어기고 프라하를 점령한 이상, 영국의 독일 정책은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영국은 독일의 다음 침략을 전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독일과의 전쟁이 가시화된 상황에서도, 영국은 소련과의 동맹을 주저했다. 다음은 체임벌린의 생각이었다.1939년 5월 21일 체임벌린이...

37년 주독 영국대사가 오스트리아 대사에게...

37년 주독 영국대사가 오스트리아 대사에게...1937년 5월 네빌 체임벌린의 집권과 더불어 주요국가 대사들이 교체되었다. 베를린,파리,도쿄신임 베를린 주재 영국대사는 네빌 헨더슨이었다. 그는 영국 외교가에서 친-유화정책론자로 유명했다. 1937년 5월, 핸더슨은 국가사회주의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했고, 특히 오스트리아 대사에게 독일의 오스트...

네빌 체임벌린과 집단안보에 대한 불만?

네빌 체임벌린과 집단안보에 대한 불만?1936년 당시 영국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를 히틀러의 독일로부터 이탈시키려 노력 중이었다. 1936년 5월, 네빌 체임벌린은 국제연맹과 집단안보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이른바 집단안보 때문에 무솔리니와 개별적으로 협상할 수 없고, 동시에 평화를 유지할 수도, 우리의 사활적인 제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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