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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라이샤워,히로히토를 살려야 하는 이유는?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에드윈 라이샤워를 언급하지 않고 전후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 일본사가 라이샤워는 이 나라를 연구하는 것을 넘어, 전후 일본을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이었다.1942년 9월, 하버드 대학에서 방금 박사학위를 받은 30대 초반의 젋은 연구자 라이샤워는 미국 국무부를 위해 일했고, 일본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다.이 글에서, ...

[40년]히로히토가 고노에에게 경고...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삼국동맹 체결 직전인 1940년 9월 20일,히로히토가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에게, "나는 현재 상황에서 일본과 독일의 군사협정이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해군이 미국과 전쟁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나는 해군 참모대학에서의 모의 전쟁 훈련에서 일본이 항상 미국에 진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들...

일본 파시즘,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없었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유럽의 파시즘과 일본의 그것을 구별짓는 것은 일본에는 두체 혹은 총통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천황이 존재했고, 많은 일본 우파들이 자신의 정치적 대의를 위해서 천황을 팔아먹었다. 하지만 대중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천황은 "구름 위의 존재"였다. 그가 히틀러나 무솔리니 처럼 발코니 위에서 광장의 대중을 ...

[38년]사이온지가 히로히토에게 화낸 이유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히로히토와 사이온지 긴모치...전쟁전 일본 정치의 불문율은 천황이 국정에 직접 간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신하들이 이미 정한 정책이라면, 천황은 이를 재가하는 식이었다.천황이 군부에 대해 도전한 거의 유일한 사례는 1928년에, 그가 만주 군벌 장작림 Chang Tso-lin 장쭤린 張作霖  의 암살 소식을...

30년대초 일본 우파가 공유했던 가치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당시에 일본의 사상통제를 담당했던 출판경찰은 일본의 모든 우파들이 공유했던 가치, 즉 일본주의,국가 사회주의, 농업주의 우파가 모두 공유했던 것은 자신의 이데올로기 독트린의 중심에 천황을 두었다는 점이었다. 1932년에 한 경찰은 일본의 모든 우익신문들의 추종 원칙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일본주의 정신에...

[36년]히로히토,"반란군 놈들이 죽던말던 간에..."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6년 2월 26일 아침, 청년장교 운동의 지지자들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도쿄 중심부를 점령하여 쇼와유신을 실행하려 했다. 그들은 천황이 자신의 계획을 지지할 것이며, 군 개혁가들이 개혁을 실천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짝사랑이었다. 천황은 26일 새벽에 반란 소식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부터...

"히로히토는 청년장교들을 혐오했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청년장교들의 천황 숭배는 이루어질 수 없는 맹목적 짝사랑이었는가? 1930년대 일본 육군의 급진주의 우파 청년장교운동은 "존황토간 尊皇討奸 Sonnō Tōkan"  “Revere the Emperor—Eliminate the Evils"을 주장했다. 즉 즉 천황을 받들어, 사악한 무리들을 처단하자...

[32년]육군의 하극상과 히로히토의 우유부단?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히로히토와 일본 육군은 제국 패망의 환상의 궁합이었는가?1931년 만주사변 발발과 더불어, 관동군과 육군 중앙의 일부 세력의 하극상이 문제가 되었다. 도쿄의 중앙정부는 이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시데하라 기주로의 도쿄가 끊임없이 전쟁 불확대 원칙을 주장했지만, 관동군은 통수권 독립이라는 명분하에 독단적으로 행사했다...

[40년]일본 육군이 내각을 끝장내는 방법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전쟁전 일본의 육군은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정부를 타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1940년 5월, 가짜전쟁을 끝내기로 한 독일이 서유럽 침략을 시작했을 때, 일본 총리는 요나이 미쓰마사 였다. 그는 외무장관 아리타 하치로와 더불어, 독일과의 동맹에 반대했다.서유럽의 전쟁에서의 독일군의 파죽지...

[36년] 쇼와유신과 청년장교 운동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2-26 사건, 1936년"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Shōwa Restoration쇼와유신은 매우 모호하게 정의된 정치 구호였다. 쇼와유신은 1936년 2-26 사건에서 청년장교운동의 반란의 구호였다. 유신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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