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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임벌린의 반공주의와 홍준표의 교훈?"

"김정은이 냉전을 끝낼 수 있을까?"체임벌린은 유화론자이기 이전에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체임벌린의 영국의 주적이 소련이고, 빨갱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강한 독일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주장했다.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반공주의를 중시하는 한국의 애국보수를 대표하는 홍준표가 30년대 영국의 반공주의자 외교를 공격하는 것은...

에릭 홉스봄, 프랑스와 영국의 유화정책...

"김정은이 냉전을 끝낼 수 있을까?"처칠의 역설은,1914년 이래 모든 문제에 대해서 거의 일관되게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내렸던 一 그가 자부했던,군사전략에 대한 판단들 포함해서 이 위대한 낭만주의자가 독일 문제라는 한가지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현실적이었다는데 에 있었다.역으로»유화정책을 추구한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의 상황판단一 1938-39년에 히틀러와의...

"반공투사 체임벌린과 소련과 타협한 처칠?"

"김정은이 냉전을 끝낼 수 있을까?"<처칠과 체임벌린>홍성곤의 한 논문에서 다음을 지적했다.처칠(W. Churchill)은 왜 체임벌린을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으로 평가했는가?필자는 이 문제가 체임벌린이 유화정책을 추진한 동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을 대영제국을 위협하는 주적으로 본 처칠은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직후 ...

"홍준표와 윈스턴 처칠?"

"김정은이 냉전을 끝낼 수 있을까?"보도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29일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비판하면서 “처칠의 혜안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홍 대표는 “히틀러의 위장평화정책에 놀아난 체임벌린보다 당시는 비난받던 처칠의 혜안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1938년 뮌헨회담으로 독일에 유화정책을 편 네빌 체임벌린...

[45년]프랑스 제국이냐,베트남 민족주의냐?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미국의 인도차이나 정책의 카오스?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의 인도차이나 정책은 프랑스 제국과 베트남 민족주의 사이에서 표류했다."이게 정책이냐!" 1945년 상반기부터 루스벨트 서거까지의 미국의 인도차이나 정책을 보면,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하는데 주저하게 된다. 이 시기 동안, 미국의 인도차이나 ...

[54년]아이젠하워,"영국이 동맹인 것 실화냐?"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1954년에 중국과 미국은 2차례의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한번은 디엔비엔푸에서 다른 한번은 대만해협에서 양국은 충돌했고, 이는 잘못했으면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었다. 공산군의 팽창에 대한 "대량보복" 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젠하워의 미국은 54년의 두 번의 위기동안 전쟁도 불사할 기세였다. 하지...

[54년]영국이 디엔비엔푸에 개입하지 않은 이유?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가 한창일 동안, 파리의 영국대사 젭 Jebb 은 베트남에 대한 영국의 군사 개입 요구를 다음에 비유했다. "이는 지난 1940년, 독일에 패배한 프랑스가 우리의 마지막 영군공군 비행대대까지도 요구한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하지만 영국은 디엔비엔푸에서 진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52년]중국의 인도차이나 침공설에 대한 미국-영국의 갈등?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한국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휴전 가능성이 대두되자, 미국 정책은 중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을 우려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에 대해서 프랑스와 영국이 미국이 이를 전쟁을 중국 본토로 확대할 기회로 삼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고, 따라서 영불 양국은 중국이 인도차이나를 침공한다고 하더라도, 연합국의 군사행동은 인도차...

[54년]디엔비엔푸 전투와 영국?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디엔비엔푸 함락 소식을 알리는 파리의 신문- 르 파리지앙, 1954년>1954년, 길었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막바지에 디엔비엔푸 전투가 있었다. 미국은 이미 이 전쟁에 깊이 개입했다. 프랑스 전비의 3/4을 담당한 것은 미국이었다. 아이젠하워는 영국에게 인도차이나에 대한 단호한 행동을 주장했다....

"윈스턴 처칠과 인종주의"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우리는 영연방이 황인종에 의해 유린당하는 것을 결코 방관할 수도, 지켜볼 수도 없다."-윈스턴 처칠1940년 8월의 각료회의 중에서Koss, Stephen. “Political Science Quarterly.” Political Science Quarterly, vol. 93, no. 2, 1978, pp. 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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