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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시어도어가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진주만]"나는 일본과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발생하면, 그것은 갑작스럽게 시작될 것이다. 이 경우, 만약 우리가 함대를 분리 배치한 상태에서 당한다면, 우리는 용서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두 사람은...

더글러스 맥아더의 인종주의와 일본?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맥아더는 항모 탑재의 항공기들에 의한 진주만 공격 소식을 듣고, 그는 조종사들이 "백인 용병"임에 틀림없다고 믿었다. David Reynolds , From Munich to Pearl Harbor: Roosevelt's America and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

[39년]"처칠, 일본의 싱가포르 공격은 없을 것이다!"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1939년 11월, 유럽에서의 세계대전은 "가짜 전쟁" 중이었다. 윈스턴 처칠은 당시 해군성 장관이었다. 처칠은 극동에서의 안보 상황을 낙관적으로 전망했고, 특히 일본이 감히 영국령 싱가포르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처칠은 다음을 주장했다."싱가포르는 15인치 포로 무장된 요새이며, 거의 2만의 병력이 지킨다. ...

[41년]윈스턴 처칠과 프린스 오브 웨일스?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극동에서의 일본의 도발에 대한 처칠의 자신감의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중요했다. 일본인에 대한 인종적 우월감이 하나였다면, 영국 해군력에 대한 자신감이 다른 하나였다. 즉 일본이 감히 영국을 상대로 도발한다고 하더라도, 영국이 해군의 자랑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보내면, 겁을 먹고 물러날 것이라란 믿음을 총리가 가...

[41년] 처칠은 일본을 어떻게 무시했는가?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쟁 초기에 영국이 일본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일본인에 대한 영국의 인종적 비하와 관련이 있다. 영국은 열등한 아시아인종 일본이 감히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윈스턴 처칠도 마찬가지 였다. 그는 일본의 공격 가능성을 끊임없이 평가절하했고, 싱가포르 무장 강화를 위한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했다....

[41년]일본 군사력에 대한 미국의 정보 부족?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진주만의 전야에 서양은 일본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했다. 민간인은 물론이고, 군부도 그랬다. 일본의 낯선 문자가 미국의 정보 획득에 어려움을 주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어학 장교,무관,교환 장교 등 일본통 장교의 배출을 등한시했다. 가령, 1920-1941년의 22년 동안, 미국 육군...

진주만 공격에 대한 야마모토와 군령부의 이견?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해군의 기본 전략에 대한 사상의 차이를 가진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와 해군 군령부는 진주만 기습에 대해서도 견해가 달랐다.우선, 해군 군령부는 하와이에 대한 공중 공격을 미국 태평양함대의 환태평양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한 보조 작전으로 간주했다. [마한의 영향을 받은 일본 해군은 적과의 조기 함대 결전을 주장한 ...

[41년]야먀모토 이소로쿠의 한탄...ㅠ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41년 9월까지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국과의 전쟁을 막기위해 노력했다. 만약 그가 해군대신 혹은 군령부 총장이었다면, 아마도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군인철학에 따르면, 연함함대 사령관은 명령이 내려지면, 그것을 실천하는 자리이지, 정책에 반대하는 보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nb...

[41년]해군 차관의 변명,왜 반대하지 못했나?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41년 10월, 일본의 국운이 달린 결정과정에서 해군성이 반대의사를 주장하지 못했다. 스스로 미국과의 전쟁 승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해군성 차관 사와모토는 후에 이렇게 변명했다. "아주 오랫동안 해군은 스스로 무적 함대라 주장해 왔는데, 미국과 싸울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41년]나가노,"해군 예산이냐, 미국과 전쟁이냐?"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나가노에게 중요한 것은 해군이었나, 일본 제국이었나?태평양 전쟁의 전야에 나가노 오사미는 통수권을 가진 해군 군령부 총장이었다. 그는 해사를 수석 졸업하고, 워싱턴 주재 해군 무관 등, 이른바 꽃길을 걸어왔던 일본 해군 최고의 인재였다. 1941년 10월, 진주만 기습을 앞두고, 그래도 미국과 전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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