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중일전쟁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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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교사건과 천안함,연평도 사건?

1937년 7월 7일의 노구교사건은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중국 북경 서쪽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과 중국군이 무력 충돌한 사건이다. 이것은 초기에는 부차적이고 의도되지 않은 사건이었고, 본질상으로 국경에서의 사소한 무력충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은 사건이 일본과 중국간의 전면전으로 비화되었다.그리고 이 중일전쟁은 중국에서의 미일관계...

미일양해안 Japan–US Draft Agreement -1941년 4월 16일

미일양해안 Japan–US Draft Agreement1941년 4월 16일 목요일, 주미 일본대사 노무라가 미국 국무장관 헐과 만났다. 헐은 노무라로부터 일본과 미국간의 비공식접촉을 통해 작성된, <미일양해안>을 받았다. 헐은 일본정부에게 공식 협의를 시작하는데 필요한 절차들을 밝아 줄 것을 요청했다. 노무라 대사는 헐 장관에게 미일양해안을...

중일전쟁과 독일...

독일-중국 관계 1911-1941년중일전쟁은 1937년 7월 7일 시작되었고, 그해 8월부터 11월초까지 어떠한 진지한 종전 협상 시도는 없었다. 하지만, 남경 함락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일본은 분쟁을 종결짓기 위한 또다른 노력에 나서게 된다. 이를 위해, 일본은 독일에게 도움을 요청, 중국 주재 독일 대사인 오스카 트라우트만과 일본 주재 독일대사인 헤...

폰 팔켄하우젠의 한마디...

독일-중국 관계 1911-1941년"나는 중국이 최종 승리를 거둘 것이라 확신한다. 일본은 전쟁과 평화, 모두 지게 될 것이다."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미국 주간지 타임, 1938년 7월 18일 인용 보도) 팔켄하우젠은 독일군인으로, 1934년 장개석의 군사자문관이 되었다. 하지만, 1937년, 나치 독일은 일본과 공식적인 동맹국이 되고, 그 일본이 중...

트라우트만 중재-1937년...

독일-중국 관계 1911-1941년오스카 트라우트만 Oskar Trautmann (1877년 5월 7일-1950년 12월 10일) 은 독일 외교관으로, 1935년-1938년까지 중국의 남경 주재 독일 대사를 역임했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트라우트만 대사는 독일-중국의 친선관계에 의거, 일본과 중국의 중재를 주선하려 했고, 이것을...

독일-중국 관계 1911-1941년

<중독협력은 20세기 초중반 중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1911년부터 1941년까지, 독일과 중국간의 협력은 중일전쟁 이전의 중화민국의 산업과 군대 현대화에 도움이 되었다. 1912년에 청을 계승한 중화민국은 군벌과 외세의 침략과 맞서 싸웠다. 1928년 북벌은 명목상으로 중국을 국민당 휘하로 통일시켰지만, 일본제국이 심각한 외세의 위...

세지마 류조,일본 패전의 경위는?

역사의 침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제 다시 일본이 개전에 이르게 된 경위를 살펴보자.첫째, 국운발전의 속도를 단호히 늦추어 만주국 건설의 범위에서 만족했어야 했다.중일전쟁은 일으키지 말았어야 했다.둘때, 1941년 6월, 미국이 일본의 해외자산 동결조치를 취할 정세에 도달하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3국동맹 체결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공은 하지...

독소전쟁 발발 과 일본...^ ^

 독소전쟁 개전 직전, 독일,이탈리아와는 삼국동맹을 그리고 스탈린의 소련과는 소일중립조약에 합의했던 일본의 계산은"독이소일 4국이 제휴해서 미영에 맞선다"는 구상이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하지만, 1941년 6월 22일 독소전쟁이 발발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이것은 일본외교에게는 또 한번의 재앙이었고, 자신이 앞잡이로 만들기...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 관련 기록...

"당시 일본군은 칭찬받을 만한 군대가 아니었다.쇼와 14년 2월에 일본 육군성이 만든 <비밀문서 제404호>,즉 사변지에서 귀환한 군대와 군인의 상황 이라는 제목의중국에서 귀환한 군인들에게서 전해 들은 것을 적은 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전투를 할때 가장 재미있는 것은 약탈인데, 상관도 제일선에서도 보고도 못 본 척하니 마음 내키는 대로 ...

[자료]제2차 세계대전 50주년-일본의 시각-동아일보 1989년

- 적어도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은 답이 안나온다.과거에 대한 어떤 합의없이, 아시아라는 미래를 아시아 각국들과 함께 전망할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환상에 다름아니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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