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중일전쟁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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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처칠 그리고 장개석의 위대함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 패배의 위기에 내몰렸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인정하고, 패배주의에 경도당할 동안, 그들은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우리는 전투에서 진 것이지, 전쟁에 진 것이 아니다.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미국이 개입할 때까지) "그들의 논리는 무엇이었나? 갈...

"모택동은 극동의 독소불가침 조약을 원했는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모택동은 진정한 중국 민족주의자였는가?장융의 모택동 평전에 따르면, 독소불가침 조약에 대해 마오는 환호했다. 마오의 태도는 이상했다. 정상적인 민족주의자라면, 장개석 처럼, 소련 불곰놈들이 독소불가침 조약 식으로 일본과 소련이 중국을 분할한다는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이 마땅했을 것이다.하지만, 조약 소식에 ...

"동맹 속의 갈등-장개석과 스탈린?"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36년 방공협정부터 39년의 독소불가침조약 이전까지 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친밀한 동맹관계였다. 하지만, 동맹관계 중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두 사람의 이데올로기 차이도 작용한 듯 보인다. 장개석이 스탈린의 지원을 가능한 많이 받기를 원했고, 스탈린의 중일전쟁 참전까지 원했다면, 스탈린...

"장고봉 사건,노몬한 전투 그리고 장개석?"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소련-일본의 국경분쟁에 대한 장개석의 태도는 어떤 것이었나?1936년 11월 독일과 일본의 방공협정 체결부터  1939년 8월의 독소불가침조약까지,장개석의 항일 활동의 최대 후원세력은 영국,미국이 아니라, 스탈린의 소련이었다. 심지어 장개석은 소련의 군사원조를 넘어서, 소련의 중일전쟁 개입을 희망했고, 줄...

[38년]스탈린,"중일전쟁에 개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중일전쟁과 소련?1936년 11월 독일과 일본의 방공협정 체결부터  1939년 8월의 독소불가침조약까지,장개석의 항일 활동의 최대 후원세력은 영국,미국이 아니라, 스탈린의 소련이었다. 일본의 예상과 다르게, 중일전쟁에서 장개석이 샤를 드골에 필적할 만한, 일본에 대한 끝없는 저항의지를 보여준 배경...

"대장정과 모택동 그리고 코민테른"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모택동이 중국공산당의 당권을 장악한 것은 코민테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해도, 적어도 코민테른의 지원이 없이 장악했다. 1934년 말의 대장정 시작 이전의 화남의 장시 성 소비에트에서 마오는 당 최고 지도자 자리를 박탈당했다. 그런데, 일단 대장정이 시작되고, 중국공산당 정치국과 코민테른 ...

[37년]중일전쟁이 소련을 기쁘게 만든 이유?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앤서니 베스트에 따르면, 1937-1940년의 중일전쟁은 소련과 일본의 대리전이었다.  [Antony Best , Imperial Japan, in Robert Boyce,‎ Joseph A. Maiolo (eds.), The Origins of World War Two: The Debate Co...

[36년]이시하라 간지가 중일전쟁을 반대한 논리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이시라하 간지의 논리]1936년 여름, 2/26사건 이후 육군내 황도파에 대한 숙청이 한 창인 상황에서,이시하라 간지는 통제파의 중국 진출 논리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고 한다.왜 가장 위험한 적이 전통적인 숙적인 러시아인, 이 때에 중국과의 전쟁이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한번에 두 개의 전쟁을 치르는 것은 약...

[39년 겨울] "위기의 일본 제국!!"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8년 8월의 독소불가침 조약은 일본에게 "놀라움, 당황,분함,원통" 그 자체였다.1933년 국제연맹 탈퇴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 일본은 북진을 위해 독일과의 동맹이 필요했다. 하지만 동맹 교섭은 독소불가침 조약으로 중단되었다. 38년 5월-9월의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에게 참패한 일본은 믿었던 독일이 ...

[37년] "일본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하타 이쿠히토에 따르면, 1937년 중일전쟁은 일본이 도발한 것이 아니라, 말려든 것이다. 37년에 일본은 중국에서의 전면전을 계획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지만, 작은 충돌이 전면전으로 비화되고, 장기적인 소모전으로 발전해 나갔다는 것이다. 37년 7월 북경의 마르코 폴로 다리에서 최초의 교전이 발생했을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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