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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가 히틀러의 첫번째 희생자였을까?

관련글 - 사운드 오브 뮤직,오스트리아 그리고 나치...<사진 - 한 오스트리아 여성의 눈물 - 기쁨의 눈물인가, 슬픔의 눈물인가?1938년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당시>Une curieuse lecture de l’histoire [오스트리아] 역사에 대한 진지한 독해 프랑스 파리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2009년 7월&nb...

토니 주트,영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에 대해...

<출처 - 토니 주트, 포스트워> 페이지 457-458귄터 그라스 와 위르겐 하버마스 에게, 전후 서독은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체제였다.서독 시민들은 히틀러 숭배에서 소비주의로, 충격적일 정도로 쉽게 그 충성의 대상을 바꿨다.즉, 번영을 통해 범죄의 기억을 달랬던 것이다. 이렇게 서독인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접고, 개인의 재산 축적에 관...

한나 아렌트,독일 방문기,1950년

6년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독일은 누구도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범죄를 저질러 서방의 도덕체계를 붕괴시켰고,승전국들은 천년이 넘는 독일의 역사 유적들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그 후 발칸반도 와 동유럽 등 동부지역에서 수백만 명이 폐허가 된 이 나라로 몰려들었다.이를 통해, 항상 존재해왔던 재앙이란 그림에 특이하게 현대적 색채가 가미되었다.그들은 말...

종전후 프랑스 사회의 풍경 하나...

"벨기에인 과 프랑스인, 네델란드인은 속이고, 거짓말하고, 암시장을 열심히 열며,의심하며, 사기를 치는 것이 ..자신들의 애국적 의무임을 전쟁에서 배웠다.이러한 습관은 5년 후에는 고질이 되었다."- 폴 앙리 스파크벨기에 외무부 장관...- 결국..점령하에서 나치를 상대로, 제대로 사기치지 않으면 , 생존이 어려웠던 사람들이나치가 물러갔다고 해서,그 사...

양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방식의 차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사람들은 대체로 살던 곳에 계속 살았던 반면, 국경선이 다시 만들어지고 조정되었다. 그런데, 1945년 이후에 일어난 일은 차라리 그 반대였다.즉, 국경선은 대체로 원래대로 유지되었고, 이번에는 대신 사람이 이동했다. 결과적으로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았지만, 유럽은 그 어느 때보다 민족적으로 훨씬 동질적인 국민 국...

[2차세계대전]종전 후의 대량이주- 독일인 문제의 최종해결?

글쎄, 최소한 유럽대륙에서 민족주의, 민족문제는 19세기적 문제라는 점이 분명하고,이 문제가 20세기초반에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극성을 부리다가,종전후 갑자기 유럽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고,이것이 재등장한 것은 동유럽 사회주의 진영의 해체 이후이다.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제2차 세계대전 종전후, 유럽에서 민족문제라는 것이 언제 있었냐는 ...

전후 독일의 풍경-1

"잡동사니! 남편과 아이들을 잃은 여자들, 아내를 잃은 남자들, 집과 아이들을 잃어버린 남녀들,농장과 토지, 상점,양조장,공장,방앗간,저택을 빼앗긴 가족들,홀로된 아이들이 작은 꾸러미를 메고 다닌다.거기에 붙은 꼬리표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이 아이들은 엄마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아니면, 이들의 엄마는 이미 죽어 다른 피난민들에 의해 길가 어딘가 묻혔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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