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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영국의 3단계 전쟁전략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9년 3월 히틀러가 프라하를 점령했을 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끝장났다. 비로서 영국은 히틀러에 대한 양보가 무용지물이란 사실을 알게되었다.39년 봄, 영국 참모본부 위원회가 이탈리아와 독일에 대한 전쟁 계획을 마련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이 계획은 2개의 전제를 가졌다 : 프랑스군이 전쟁 초...

[38년]장개석 군대는 아시아의 줄루 족이었나?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중일전쟁에 대한 장개석의 기본 전략은 일본군을 무력으로 제압하기 보다는 거대한 중국이란 전장의 수렁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1938년 10월, 우한이 함락되자, 장개석은 고급 지휘관들에게, 자신의 초기 전략, 즉 공격적 방어가 잘 마무리된 것이라 평가했다. 그의 전략은 일본에게 큰 비용이 들게 유도하는 것...

[41년]미국과의 전쟁 승리를 위한 일본의 계획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진주만 기습 공격을 앞두고, 일본은 어떻게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가 가능하다고 믿었을까?1941년 11월 15일, 일본의 대본영-정부 연락회의에서는 지연전을 구사하여, 미국의 전쟁 의지를 꺾는 계획을 토론했다. 도쿄 지도부는 미국에 대한 완벽한 승리는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대신에, 태평양에서 일련의 ...

"게릴라전에서 1당독재가 승리하는 이유는?"

연평도 포격사건에서 공군 반격 실패 원인은?[게릴라전][소모전][비대칭 전쟁]다음은 중국 모택동의 주장이라고 한다 :소모적인 게릴라전의 핵심은 입법부를 가진 국가들이 단순하게 소모전을 치를수 없다는 것이고, 이는 재정적으로도 그렇고, 혹은 장기적으로 심리적으로도 그렇다.  실제로, 다당제 구조라는 현실 자체가 장기전이라는 전망을 정치적으로 매...

오스트리아 합병 직후, 영국의 상황인식?

전쟁에 대한 체임벌린의 인식 변화...[제2차 세계대전][오스트리아 합병][유화정책]1938년 3월 12일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합병은 오스트리아에서 충분히 환영받았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에 이에 무력으로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영국총리 네빌 체임벌린은 1938년 3월 12일의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직후 그의 누이동생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했다...

"전쟁, 식민지군대 그리고 인종주의"

제1차세계대전에서 프랑스는 어떻게 아프리카 식민지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을까?영국 BBC의 관련 다큐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제1차세계대전][식민주의][인종주의][서부전선]전쟁이 계속될수록, 프랑스는 병력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 식민지로 눈을 돌렸다. 중부 아프리카에서 13만명,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5만명이 징집되었다.프랑스의 서아프리카 식민지들도 수천...

"러일전쟁이 슐리펜에게 준 영향은?"

"1898년에 바라본 미래의 전쟁은?"<사진- 러일전쟁의 참호전, 1904년, 러시아군의 참호>[제1차세계대전][7월위기][군사전략]폴란드의 이반 블로흐가 1898년 <이제 전쟁은 불가능한가?>를 통해, 미래 전쟁의 산업적 전쟁 성격을 강조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블로흐는 미래의 전쟁이 장기전,참호전,총력전이 될 것이라 전...

"프랑스 외교를 겁쟁이로 만든 것은 영국!"

 <전간기 프랑스 외교의 주요 관심사?>역사가 로버트 영 Robert Young 에 따르면,전간기 프랑스 외교의 주요관심사는 <장기전>과 <영국>이었다고 한다. 즉 당시 프랑스의 외교 와 군사 전략은 <장기전>개념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선, <장기전>은 1918년에 끝난 전쟁...

"히틀러가 계획하지 않았던 유일한 일이 있다면?"

역사가 테일러의 지적에 따르면,그것은 흔히 히틀러의 탓이라 간주되는, <대규모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전쟁관이란, 대규모 전쟁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고,그는 독일의 생활공간 문제를 하나하나 점차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소규모 전쟁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고,심지어, 전쟁 없이도 ,이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기도 ...

"히틀러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독일이 장기전을 치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히틀러가 계속해서 고민한 중심 문제였다.하지만 이 때문에 히틀러가 강대국의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에 그는 이 어려움을 교묘한 속임수로,즉 대규모 전쟁을 준비하는 척하면서, 사실상 준비하지 않는 방식으로 피해갔다. 히틀러는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전면전은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총력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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