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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만주사변과 미국,영국,소련의 대응?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승리에 환호하는 일본군 -1931년>  -지금은 웃고있지만..ㅠㅠ만주에서의 일본 관동군의 도발에 대해서 왜 열강은 무기력하게 대처한 것인가? 1931년 만주에서의 일본 관동군의 도발에 대해서, 만주의 군벌 장학량은 화북에 병력을 모으로, 만주의 변경을 게릴라식으로 공격하는 저항을 했다...

"장학량과 무솔리니의 딸?"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중국 현대사에서 장학량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1936년 12월의 시안 사변으로 장학량은 장개석을 납치하면서, 중국사의 방향을 바꾸었다. 장학량은 시안사변으로 역사의 무대에 혜성과 같이 떠올랐다가, 사건 이후 가택연금 당하면서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졌다.그가 난봉꾼에 아편중독자였고,중국 공산당의 주은래와 항일...

천리푸,"중일전쟁은 소련의 작품이었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중일전쟁을 중국과 일본의 전쟁으로만 해석하는 관점의 한계는 무엇인가? 왜 우리에게 전쟁을 국제적인 시각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 필요할까? 중일전쟁에 대한 스탈린의 그림자는 무엇이었나?호사카 마사야스의 쇼와 육군에 따르면,국민당의 정치인 천리푸는 중일전쟁에 대해서 흥미로운 해석을 했다. 이 전쟁은 스탈린의 소련 작품...

중국과 태평양전쟁의 기원-1931-1941.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도서관에서 중국 역사학자 선유리의 책을 빌렸다.SUN, YOULI, China and the Origins of the Pacific War, 1931-41 , Palgrave Macmillan; 1996.일단 주제 자체가 참신하다. 태평양전쟁 하면, 미국과 일본의 대결임을 부각하는 풍토에서, 중국을 중심에 두었다...

[41년]장개석, "내가 미국을 일본과 전쟁하게 만들었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미국을 유도해서 일본과의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던 입장을 취하도록 한 것은 누구였는가?장제스는 실제로 자신이 미국의 태도를 강경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실제로 미미했다고 하더라도, 장제스는 41년의 미일협상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물론 영국의 처칠이 장개석 보다는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 41년에...

[36년]"반공주의를 위해 소련과 친해야 한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상식적으로 보면, 공산주의를 지지하면, 소련과 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역으로, 반공주의자라면, 소련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것이 지당하다.그런데,역사가 존 가버에 따르면, 1936년 12월의 서안사변에서 장개석 세력이 얻은 교훈은 독특했다. 즉 "반공주의는 친-소련 pro-Sovie 일 ...

[35년]코민테른의 인민전선과 중국공산당 그리고 장개석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유럽에서는 독일이,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평화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제7차 코민테른 대회가 1935년 7월에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다. 대회에서 스탈린은 소련과 국제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서양 자본주의 민주국가들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의 파시스트 체제라고 규정했다. 독일,이탈리아,일본이라는 파시즘 체제와의 정...

[37년]히틀러,"전 장개석을 존경합니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히틀러와 장개석의 동서인 쿵샹시- 베를린>[히틀러와 장개석]위키백과에 따르면, 독일과 중국의 협력 관계는 나치 독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가속화되었다.양국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 장개석의 핵심 측근이자 동서인 쿵샹시가 1937년에 독일 베를린을 방문, 아돌프 히틀러와 만난 일이었다. 쿵샹시가 ...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역사는 때로는 역설 덩어리라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반공투사 장개석과 공산주의의 수장 스탈린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랬을까?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소련의 국익이 충돌할 때의 스탈린의 선택은 어떤 것이었는가?1936년 12월이면, 중국 장개석의 공산당 토벌이 상당히 진전된 상황이었고, 승리가 눈앞에 온 것처럼 보였...

중소분쟁과 대만의 장개석의 대응?

냉전의 역사에서 장개석하면, 한국의 이승만과 더불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반공투사이다. 모택동의 중국과 그를 지원한 소련은 반공주의자 장개석에게 원수라고 할 수 있다. 모택동과의 국공내전에서 소련은 장개석에게 빅엿? 을 날린 바 있었다. 하지만, 60년대를 경과하면서, 중소분쟁이 고조되고, 60년대 말에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화해로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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