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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육군 문화, 하극상이 일반적이었나?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아리카 후지와라에 따르면, 일본 육군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지휘관 보다는 참모장교가 중심적 역할을 행사했다고 한다. 이는 현상은 바로 하급 장교들이 주도한다는 하극상 Gekokujō gekokujo 下克上 으로 알려졌다. 영국,미국과 달리, 일본군 지휘관은 자신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명령을 내리는 일이 드물...

근대 일본의 정신분열, 해양세력인가,육상세력인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메이지 일본의 햄릿의 고민은 "해상진출인가, 대륙침략인가, 그것이 문제로다."였다. 일본 같은 자원이 빈약한 국가의 경우, 섬나라임을 고려할때, 근대일본은 자신의 발전 방향이 해양 세력인지, 아니면 육상 세력인지 조기에 결정했어야 했다. 일본이 해양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사카모...

[1922년]일본 육군에게 화력이 필요없는 이유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제1차세계대전을 계기로 서구열강 군대가 포병 중심의 화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데 반해서, 일본 육군은 화력을 경시하고, 포병 전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일본이 화력 대신 강조한 것은 정신력이었다. 이처럼 일본 육군은 보병전술의 근간을 바꾸지 못한 채, 러일전쟁 이후 신봉해온 ‘일본 고유의 전술’인 백병돌격을 ...

다나카 기이치, 제1차 세계대전의 교훈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육군 참모차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는 제1차 세계대전의 교훈에 대해 “우리 국정(國情) 그리고 국민성은 지금 유럽의 전쟁과 같이장기에 걸친 작전에는 불리한 것이 확실하며, 현재의 국력으로 장래의적에 대해 절대적으로 우세를 점하기는 부족하다”고 평가하였다. 이는 일본의 국력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볼 때 전쟁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포병(화력)을 무시했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러일전쟁 이후 일본육군을 돌격주의를 강조하며, 화력주의를 경시했다. 그 희생양은 일본포병이었다. 1920년대 일본 육군은 우가키 군축을 계기로, 사단의 수를 줄이는 대신에 군의 기계화,근대화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는 제1차세계대전의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무기와 장비를 적당히 교체하는 선에 그쳤다....

1919년,일본 육군, 정신력만으로 싸울 수 없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제1차세계대전은 일본 육군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러일전쟁 식으로 미래의 전쟁을 싸우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1919년 12월,육군 임시군사조사위원회 보고서제1차 세계대전의두 번째 충격은 ‘황군(皇軍)’의 ‘정신적 우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을 조사,...

1917년 각국의 포탄 생산 능력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17년 4월 기준각국의 일일 포탄 생산량 추정,러시아 11만 발, 오스트리아 16만 발, 영국 29만 발, 프랑스 31만 발, 독일 44만 발, 일본은 한 달에 10만 발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군수 산업의 생산력에서 일본은 서구열강에 크게 뒤쳐졌다. 야마다 아키라, 일본 군비확장의 역사, ...

[1966년]아라키 사다오, 황도파에 대해서...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66년 사망 몇 주 전의 인터뷰에서 아라키 장군은"우리 황도파가 이상주의자였다면, 통제파는 현실주의자였다. 우리는 당시에 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라를 메이지의 5대 원칙에 따른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단순하게 중국을 쳐부수는 것은 옳지않았다." "하지만 이상을 주장하...

"만약 2월 26일 사건이 성공했다면?"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육군 수뇌부에서 황도파가 제거된 것은 일본의 대륙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1936년 2월 26일 사건이 성공했다면, 37년의 중일전쟁은 없었을 것이란 주장이 존재한다. 사건을 주도한 황도파는 러시아와의 전쟁에 몰두했다. 따라서 쇼와유신에 성공한 황도파는 러시아와의 대결을 위해서, 중국과의 전쟁을 피하려...

일본 파시즘,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없었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유럽의 파시즘과 일본의 그것을 구별짓는 것은 일본에는 두체 혹은 총통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천황이 존재했고, 많은 일본 우파들이 자신의 정치적 대의를 위해서 천황을 팔아먹었다. 하지만 대중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천황은 "구름 위의 존재"였다. 그가 히틀러나 무솔리니 처럼 발코니 위에서 광장의 대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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