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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가토 간지와 사무라이 협상법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21년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미일간의 쟁점이 된 것은 해군력 비율에 대한 것으로, 미국은 일본의 비율을 100의 미국 대비 60으로, 일본 70을 고집했다. 비율 협상을 담당한 것은 일본 강경파 해군중장 가토 간지와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주니어였다. 미국 대표는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었다. 협상이...

[1921년]가토 도모사부로, 역사란 무엇인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20년대 일본 해군의 역사는 2명의 가토의 경쟁과 갈등으로 정리가 가능하다.일본의 국운이 달린 워싱턴 해군 군축회의에 일본 해군의 가토 도모사부로와 가토 간지가 나란히 참석했다. 1921년의 일본에서 해군대신 가토 도모사부로와 해군 중장 가토 간지는 각각 2개의 해군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었다. 전자가...

제1차대전과 일본 해군이 얻은 모순된 교훈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18년 11월제1차 세계대전 종전 - 일본 해군이 얻은 2가지 다른 교훈?제1차세계대전을 통해서 일본 해군은 2가지 서로 다른 교훈을 얻었다. 해군대신 가토 도모사부로의 교훈이 하나라면, 해군 중장 가토 간지의 그것이 다른 하나였다. 2명의 가토의 논쟁이었다. (가토 도모사부로는 해군의 나가타 데쓰잔이...

[1907년]일본 해군, 대미 전쟁 계획.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 해군이 처음으로 미국을 가상 적으로 상정한 것은 1907년 제국국방방침 Imperial National Defense Policy 이었다. 국방방침에 따라, 일본 해군은 작전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추론하자면 다음과 같았다.전쟁 초에, 일본 해군은 필리핀에 대한 공격 작전을 실시, 그곳...

[14년]알프레드 마한, 제1차세계대전의 전망?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14년에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알프레드 마한은 유럽의 전쟁이 즉시 태평양에서 반향을 일으킬 것이며, 미국의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보았다. 8월 15일 일본이 독일에 선전포고하자,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전쟁이 발발하면, 일본은 마리아나를 포함한, 적도 이북의 중부 태평양의 독...

[42년]도고 시게노리 아내의 근거없는 자신감?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45년에 일본이 미국에게 받은 폭격을 고려하면, 일본은 미리 방공호 시설을 마련했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았다. 이유는? 도쿄가 공습받을 일이 없을 것이란 자신감 때문이었다.천황의 황군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초반에 연전연승하고, 무적의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도쿄 ...

알프레드 마한과 하와이 그리고 필리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미국의 제국주의자 알프레드 마한은 일찌기 하와이의 병합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마한은 필리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주장했을까? 아사다 사다오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1898년 미서전쟁 이후, 미국은 필리핀과 괌을 획득했다.  미국은 이제 서태평양에서 교두보를 확보했고, 동아시아 국제정치에 개입할 ...

1893년,하와이에서 미국과 일본의 충돌?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41년 진주만 기습의 전조는 1893년에 발생했다. 1893년 1월에 하와이 혁명이 발생하자, 알프레드 마한은 "하와이와 우리 해양력의 미래"라는 논문을 발표, 병합을 주장했다. 1월 16-17일 호놀롤루 거주의 소수 미국인 교민들이 미국 군함 보스턴호의 수병과 해병과 미국 공사인 존 스티븐스의 도움을...

프랑스와 일본 제국의 구조적 약점?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군사전략의 효율성이란 관점에서 강대국은 근대화 초기에 자신이 해양세력이 될지, 아니면 육상세력이 될지를 선택,결정하는 일이 중요했다고 생각한다.17세기 이후 대영제국이 해양세력으로 눈부신 성공을 거둔 것도, 육군력 증강이란 유혹을 과감히 포기하고, 해군력 증강에 몰입한 결정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파시즘 일본과 로맹 롤랑?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15년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프랑스의 로맹 롤랑만큼 파시즘,전체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로맹 롤랑은 드레퓌스 사건에서 반유대주의와 투쟁했고, 파시즘에 반대했고, 전쟁을 반대한 평화주의자였다.로맹 롤랑은 전쟁전 일본에서 인기있는 서양 작가였다. 롤랑의 책을 처음 일본어로 번역한 사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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