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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잇키와 조선인...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기타 잇키>유명한 우익 이론가인 기타 잇키는 1923년에 출간된 그의 《일본개조법안대강>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이 별개의 인종을 이루지 않았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주장했다. 일본 민족에는 조선인 혈통이 크게 섞여 있을 뿐 아니라 "나라와 해이안 시대의 귀족들”은 "순수 조선인 혈통”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

"일본 제국은 미국 흑인 해방의 구세주인가?"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전쟁 동안 일본 제국은 자신의 전쟁을 위해서 미국 내의 흑인 인종문제를 이용했다고 한다.제2차 세계대전 동안,대략 125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징병 거부로 체포당했다. 이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 반체제 성향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에 강력한 친일 정서가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미국 흑인 중산층 및 노동자층에서 ...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몇 년 전에 대만에 놀러갔을 때,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는 일본 제품 광고에 흥미를 가졌다. 대만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만 토박이 입장에서 보면, 본토 중국인이나 일본 제국이나 같은 이방인,외세라는 점이 작용한 것 같다.흥미로운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한국인 보다 더 많은 대만인들이 일...

[45년]일본 붕괴와 일본 교사의 멘붕?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 역사가 아사다 사다오는 1945년 당시 9세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역사적 상대주의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모든 시대는 자신만의 역사 해석을 가진다는 것이다.1945년 9월 20일, 일본 항복 한달 후, 교육부 차관이 각 현의 지사들에게, "항복에 부응하는 교과서 취급 방안"이라는 공문을 보냈...

45년 8월, 해군성 조사반의 뒤늦은 후회?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헤겔의 주장 처럼,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되야 날개를 편다. 1945년 8월, 일본 패망의 전야에,일본 해군성 조사반의 한 보고서는 해군이 총력전의 현실을 인정하는데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해군은 군사전략에만 매몰되어, 비군사적 영역에 대한 통찰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전쟁은 군대만 할 수 없다는 점은...

전쟁전 일본군 지도부의 시대착오성?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그들은 총력전이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일부 선각자들은 이해했지만, 죽거나 혹은 부차적인 지위에 있었다.총력전의 시대에, 제한전을 주장한다는 것의 시대착오가 일본을 파멸로 몰았다.  애초에 총력전 시대의 도래는 세계사의 객관적 조건이 제한전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서가 아니었는가?다가올 미지...

가토 간지, 일본 해군의 간웅?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잘못된 사상을 가진 군인 한명이 한 나라를 파멸로 몰아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전쟁 전 일본 해군 역사에서 가토 간지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아사다 사다오에 따르면, 가토 간지의 유령이 일본 해군 지도부를 진주만이란 비극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41년 12월 진주만 기습이 성공하자, 가토의 수제자 스에쓰...

진주만 공격에 대한 야마모토와 군령부의 이견?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해군의 기본 전략에 대한 사상의 차이를 가진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와 해군 군령부는 진주만 기습에 대해서도 견해가 달랐다.우선, 해군 군령부는 하와이에 대한 공중 공격을 미국 태평양함대의 환태평양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한 보조 작전으로 간주했다. [마한의 영향을 받은 일본 해군은 적과의 조기 함대 결전을 주장한 ...

[41년]야먀모토 이소로쿠의 한탄...ㅠ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41년 9월까지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국과의 전쟁을 막기위해 노력했다. 만약 그가 해군대신 혹은 군령부 총장이었다면, 아마도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군인철학에 따르면, 연함함대 사령관은 명령이 내려지면, 그것을 실천하는 자리이지, 정책에 반대하는 보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nb...

[41년]해군 차관의 변명,왜 반대하지 못했나?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41년 10월, 일본의 국운이 달린 결정과정에서 해군성이 반대의사를 주장하지 못했다. 스스로 미국과의 전쟁 승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해군성 차관 사와모토는 후에 이렇게 변명했다. "아주 오랫동안 해군은 스스로 무적 함대라 주장해 왔는데, 미국과 싸울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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