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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공격에 대한 야마모토와 군령부의 이견?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해군의 기본 전략에 대한 사상의 차이를 가진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와 해군 군령부는 진주만 기습에 대해서도 견해가 달랐다.우선, 해군 군령부는 하와이에 대한 공중 공격을 미국 태평양함대의 환태평양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한 보조 작전으로 간주했다. [마한의 영향을 받은 일본 해군은 적과의 조기 함대 결전을 주장한 ...

[41년]야먀모토 이소로쿠의 한탄...ㅠ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41년 9월까지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국과의 전쟁을 막기위해 노력했다. 만약 그가 해군대신 혹은 군령부 총장이었다면, 아마도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군인철학에 따르면, 연함함대 사령관은 명령이 내려지면, 그것을 실천하는 자리이지, 정책에 반대하는 보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nb...

[41년]해군 차관의 변명,왜 반대하지 못했나?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41년 10월, 일본의 국운이 달린 결정과정에서 해군성이 반대의사를 주장하지 못했다. 스스로 미국과의 전쟁 승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해군성 차관 사와모토는 후에 이렇게 변명했다. "아주 오랫동안 해군은 스스로 무적 함대라 주장해 왔는데, 미국과 싸울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41년]나가노,"해군 예산이냐, 미국과 전쟁이냐?"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나가노에게 중요한 것은 해군이었나, 일본 제국이었나?태평양 전쟁의 전야에 나가노 오사미는 통수권을 가진 해군 군령부 총장이었다. 그는 해사를 수석 졸업하고, 워싱턴 주재 해군 무관 등, 이른바 꽃길을 걸어왔던 일본 해군 최고의 인재였다. 1941년 10월, 진주만 기습을 앞두고, 그래도 미국과 전쟁하는 것...

41년 일본을 위한 하나의 이론적 가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전쟁이냐 평화냐는 중요한 문제를 10명의 집단이 결정한다고 가정하자.10명은 모두 국가 최고의 엘리트 과정을 경험했다. 유년 시절부터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그들은 개개인으로 모두 합리적으로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다.하지만, 집단으로 그들이 광기에 사로잡혀서, 미친 결정을 내린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즉, 개...

일본 해군과 동남아 자원 수송 문제?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40년 5월,해군대신 요시다, 해군의 해상 호송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그럼에도 실천된 일은 거의 없었다.전쟁 자원이 부족했던 일본은 동남아를 지배해야 했다. 하지만 지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동남아의 자원을 전시 상황에서 일본으로 수송하는 문제가 남았다. 이 문제는 거의 무시되었다.해상 수송로 보호를 위해서...

[40년]히로히토가 고노에에게 경고...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삼국동맹 체결 직전인 1940년 9월 20일,히로히토가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에게, "나는 현재 상황에서 일본과 독일의 군사협정이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해군이 미국과 전쟁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나는 해군 참모대학에서의 모의 전쟁 훈련에서 일본이 항상 미국에 진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들...

[40년]고노에, 삼국동맹 그리고 해군?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 제국의 역사에서 1940년 9월의 삼국동맹은 중요한 결정이었다. 미일전쟁과 일본의 동남아 침략의 뿌리가 여기에 있었다. 삼국동맹 당시 일본 총리였던 고노에 후미마로는 이후 삼국동맹이라는 오류를 해군 탓으로 돌렸다. 고노에는 삼국동맹 논쟁에서 해군이 미국을 감당할 수 없다고 끝까지 주장해 주기...

일본 황도파 청년장교들의 어리석음이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육군 황도파가 이른바 쇼와유신을 통해서, 일본이 소련과 전쟁하여, 만몽 문제를 군사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치자.이를 국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해군을 설득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의 해군 주류는 함대파로, 그들은 미국과의 전쟁도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육군의 황도파의 입장에서, 소련과 전쟁하여 대륙으로 치...

"육군 황도파와 해군 함대파의 관계?"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군의 군국주의화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아라키 사다오의 육군 황도파와 가토 간지의 해군 함대파의 궁합이 맞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육군과 해군의 각 파벌은 1930년대 초에 부상했다. 두 파는 이른바 "1936년 위기설"을 주장했다. 런던 해군 조약이 재협상되는 35년-36년에 일본에 대외적인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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