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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은 육군의 하극상 때문에 망했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 군국주의] 일본 육군의 하극상상급자에 대한 하급자의 충성과 복종이라는 이미지는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지는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상명하복의 문화를 가진 나라 일본의 군대에서의 하극상이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특히 명령에 죽고사는 군대 내부에서 말이다.전쟁 동안 히로히토의 옥쇄관이었던 기도 고...

[일본 육군] 육군의 최고 실력자는 누구인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제국의 육군에서 3인방은 육군대신,육군 참모총장,교육총감이었고, 그들에게 신임 육군대신 결정 권한이 있었다. 3명의 합의가 있어야만 했다.3명 중에서, 육군 참모총장이 실권자였다. 그는 항상 2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참모총장에게 교육총감 임명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조 히데키의 심복이었던...

요나이 미쓰마사, 육군 교육의 문제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전쟁전 일본군에서 육군과 해군의 정책 갈등이 문제였다.해군대신과 총리를 역임한 요나이 미쓰마사는 다음을 지적했다."본질적으로, 나는 육군과 해군의 교육에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 육군은 청년들을 15-16세부터 교육을 시키며, 어린 나이의 그들에게 전쟁만을 가르친다... 그 결과, 그런 절차를 따른 육군은 편협한 시...

새뮤얼 헌팅턴,"일본군과 독일군의 차이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반적인 현대 직업군인의 시각에서 전쟁은 원론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며, 국책의 마지막 수단으로 간주된다. 이와는 다르게, 일본의 전통 무사는 폭력을 찬양하는 경향을 가졌고, 전쟁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숭배했다. 일본 육군대신은 "전쟁은 창조의 아버지이며, 문화의 어머니이다. 국가들 간의 패권 경쟁은 적에 ...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일본의 위기?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제1차세계대전 무렵, 메이지 유신 시절의 부국강병의 꿈이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종전과 더불어,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견제가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가 일본인들에게 실망을 안겼다.일본은 중국에 산둥 반도를 반환했다. 시베리아 원정은 재앙으로 끝났다. 워싱턴 조약체제를 통해서, 미국은...

[일본 군국주의] 미시마 유키오의 한마디- 1968년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2-26사건은 쇼와 시대의 위대한 정치적 사건인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정신과 정치의 가장 거대한 충돌이었다. 이 사건에서 정치가 승리하고, 정신이 패했다."- 미시마 유키오일본 극우 사상가출처-Shillony, Ben-Ami. Revolt in Japan :the young officers and the...

[일본] 황도파는 파시스트 세력과 투쟁했는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30년대 일본 육군의 주요 지도자, 아라키 사다오, 마자키 진자부로,나가타 데쓰잔,도조 히데키를 "파시스트"로 규정하는 인식의 한계는 무엇인가? 1930년대 일본 육군 역사는 아라키 사다오,마자키 진자부로의 황도파와 나가타 데쓰잔의 통제파의 파벌 싸움으로 전입가경이었다.투쟁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은 193...

[32년]총리 암살범에 대한 육군,해군대신의 입장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오스미 미네오- 일본 해군대신1932년 전반은 일련의 정치 암살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일부 청년장교들과 극우단체 혈명단이 정치 테러를 주도했다.1932년 2월 9일, 혈맹단은 전 일본은행 총재 준노스케 이노우에를 총으로 암살했다.3월 5일, 혈맹단은 재벌그룹 미츠이의 총수 단 타쿠마를 암살했다.1932년 5월 15...

[일본 군국주의]기타 잇키, "좌파인가, 우파인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의 급진 사상가 기타 잇키와 그의 추종세력인 청년장교들은 스스로를 좌파 혹은 우파로 간주하지 않았다.1923년의 저술에서 기타는 "이 책의 저자는 행동하는 인간이며, 혁명의 제국 건설을 위해 일한다. 따라서 저자가 좌파냐, 우파냐는 질문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류의 질문은 시대착오적이다."라 적었다.1932년 이...

다나카 류키치, 육군 황도파와 통제파의 갈등?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다나카 류키치(田中隆吉 1893.07.09~1972.06.05).다나카 류키치는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2-26사건의 배경에는 일본 육군 내부의 황도파와 통제파의 갈등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다나카에 따르면,1) 황도파를 주도한 것은 아라키 사다오와 마자키 진자부로였고, 통제파는 나가타 데쓰잔, 우메즈, 도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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