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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윈스턴 처칠과 프린스 오브 웨일스?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극동에서의 일본의 도발에 대한 처칠의 자신감의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중요했다. 일본인에 대한 인종적 우월감이 하나였다면, 영국 해군력에 대한 자신감이 다른 하나였다. 즉 일본이 감히 영국을 상대로 도발한다고 하더라도, 영국이 해군의 자랑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보내면, 겁을 먹고 물러날 것이라란 믿음을 총리가 가...

[42년초]일본 해군의 눈부신 전과?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 항공모함 함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만큼 높았고 거의 오만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건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까지 함대는 실질적인 패배를 당한 적이 없었으므로 미군의 해군, 보병, 조종사들의 전투력 따위는 전혀 겁날게 없었던 것이다. 1941년 12월 7일 전쟁이 발발했을 때부터 일본은 항공모함의 전력만으로...

조선인 지원병과 일본 해군?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일제강점기하 조선인들이 일본 육군에서 근무한 기록은 많지만, 해군은 그렇지 않다.그 배경은, 1943년 8월 1일 해군특별지원령이전까지, 일본 해군은 조선인과 대만인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일본 해군은 적은 수의 믿을 수 없는 부대원들이 함정을 사보타주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한다.출처-다카시 후지타...

45년 8월, 해군성 조사반의 뒤늦은 후회?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헤겔의 주장 처럼,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되야 날개를 편다. 1945년 8월, 일본 패망의 전야에,일본 해군성 조사반의 한 보고서는 해군이 총력전의 현실을 인정하는데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해군은 군사전략에만 매몰되어, 비군사적 영역에 대한 통찰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전쟁은 군대만 할 수 없다는 점은...

가토 간지, 일본 해군의 간웅?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잘못된 사상을 가진 군인 한명이 한 나라를 파멸로 몰아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전쟁 전 일본 해군 역사에서 가토 간지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아사다 사다오에 따르면, 가토 간지의 유령이 일본 해군 지도부를 진주만이란 비극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41년 12월 진주만 기습이 성공하자, 가토의 수제자 스에쓰...

진주만 공격에 대한 야마모토와 군령부의 이견?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해군의 기본 전략에 대한 사상의 차이를 가진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와 해군 군령부는 진주만 기습에 대해서도 견해가 달랐다.우선, 해군 군령부는 하와이에 대한 공중 공격을 미국 태평양함대의 환태평양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한 보조 작전으로 간주했다. [마한의 영향을 받은 일본 해군은 적과의 조기 함대 결전을 주장한 ...

[41년]야먀모토 이소로쿠의 한탄...ㅠ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41년 9월까지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국과의 전쟁을 막기위해 노력했다. 만약 그가 해군대신 혹은 군령부 총장이었다면, 아마도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군인철학에 따르면, 연함함대 사령관은 명령이 내려지면, 그것을 실천하는 자리이지, 정책에 반대하는 보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nb...

[41년]해군 차관의 변명,왜 반대하지 못했나?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41년 10월, 일본의 국운이 달린 결정과정에서 해군성이 반대의사를 주장하지 못했다. 스스로 미국과의 전쟁 승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해군성 차관 사와모토는 후에 이렇게 변명했다. "아주 오랫동안 해군은 스스로 무적 함대라 주장해 왔는데, 미국과 싸울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41년] 야마모토의 한마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국내의 혁명으로 국가적 재앙이 초래되지 않지만, 가망없는 전쟁은 그럴 수 있다.-야마모토 이소로쿠연합함대 사령관- 41년, 국운을 건 결정에서해군대신 오이카와는 육군 눈치를 보면서전쟁 반대 의사를 강조하지 못했다. 일본 해군과 육군과의 갈등을 우려해서, 미국과의 전쟁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41년]나가노,"해군 예산이냐, 미국과 전쟁이냐?"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나가노에게 중요한 것은 해군이었나, 일본 제국이었나?태평양 전쟁의 전야에 나가노 오사미는 통수권을 가진 해군 군령부 총장이었다. 그는 해사를 수석 졸업하고, 워싱턴 주재 해군 무관 등, 이른바 꽃길을 걸어왔던 일본 해군 최고의 인재였다. 1941년 10월, 진주만 기습을 앞두고, 그래도 미국과 전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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