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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일본은 극동에서 반공의 보루이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만주에서의 일본의 사명은, 서양문명을 대표하여 소련의 팽창주의를 막아주는 것인가?1931년 만주사변에 대해서 왜 미국은 미미하게 대처한 것인가? 만주 침략으로 일본이 이른바 1923년의 워싱턴 조약체제의 근간을 위협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그 이유들 중 하나는 미국 정부의 반공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미국의...

"펠레폰네소스 전쟁과 31년의 만주사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국제정치 사상에서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멜로스 대담이다. 멜로스 대담은 아테네가 중립국 멜로스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진행되었다. 공격에 앞서, 아테네는 멜로스인들에게 항복이냐 전멸이냐 중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멜로스측의 아테네의 주장의 부당함에 항의하자, 아테네의 주장은 다...

[31년]만주사변에 대한 프랑스 신문의 인식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오늘 날의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1931년의 일본의 만주 침략은 야만적 행동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의 프랑스의 한 신문의 시각은 이와 달랐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일부 관료들은 일본을 야만에 맞선 아시아의 문명의 수호자로 간주했다. 즉 일본은 혼란과 볼셰비즘에 맞서 아시아에...

[37년]중일전쟁 발발에 소련이 환호한 이유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중일전쟁 발발과 소련,독일의 반응?1937년은 스탈린의 대숙청의 여파로 소련의 붉은 군대가 취약했다. 따라서 소련은 자신에 대한 일본의 전쟁 도발을 두려워했다.7월 7일 노구교(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으로 중일전쟁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물론 이 사건이 중일 양국의 전면전으로 비화될지는 아직 ...

[36년]소련, 중일전쟁이 필요하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5년 초 이래, 관동군을 중심으로 한 일본육군의 주요 관심사는 화북 분리공작이었다.  The North China Buffer State Strategy 즉, 화북을 중국에서 분리시키고, 이곳에 친일 괴뢰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그 목표였다. 일본의 화북 침략이 외몽골을 위협하자, 소련은 긴장하...

[35년]몰로토프,일본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3년 5월의 탕구협정 이후 ,만주사변이 공식 종료되면서, 중국에서 왕징웨이의 주도하의 남경 정부는 일본에 대한 우호정책을 실시했다. 중국의 친일정책의 결과, 1935년 초가 되면, 중일 화해를 넘어선, 중일동맹의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소련은 긴장하게 되었다. 극동에서의 중일동맹의 결성은, 일본의 소련 침략 위...

[32년] 소련과 일본의 전쟁 위기?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0년대 내내 소련과 일본은 극동에서 간헐적으로 충돌했다. 이 충돌 중에서 소련에게 가장 위험했던 것은 32년 8월의 위기 상황이었던 것 같다.중일전쟁 발발과 더불어, 이누카이 쓰요시 내각에서 소련과의 전쟁을 주장하는 일본 육군 황도파의 대부, 아라키 사다오가 육군대신을 역임할 동안(1931-1934)...

[40년]당시 일본을 동물에 비유하자면?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40년 9월 27일독일·이탈리아·일본, 삼국 동맹을 맺었다.40년의 일본을 동물에 비유하자면, 그것은 바로 하나에나 였다.40년 여름, 서유럽의 초원에서 독일이라는 늑대가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빠르게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당황한 사자 영국은 섬나라에 고립되었다.사냥 결과 남은 썩은 고기들이 바로 극동의 프랑스와 ...

[38년]장개석 군대는 아시아의 줄루 족이었나?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중일전쟁에 대한 장개석의 기본 전략은 일본군을 무력으로 제압하기 보다는 거대한 중국이란 전장의 수렁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1938년 10월, 우한이 함락되자, 장개석은 고급 지휘관들에게, 자신의 초기 전략, 즉 공격적 방어가 잘 마무리된 것이라 평가했다. 그의 전략은 일본에게 큰 비용이 들게 유도하는 것...

[41년]미일 협상에 대한 장개석과 처칠의 초조함?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41년 미국과 일본의 협상에 대한 장개석과 처칠의 인식은 무엇이었나?1941년 2월에 시작된, 미국 국무장관 헐과 주미 일본대사 노무라 기치사부로의 미일 협상에 대해서, 중국의 장개석과 영국의 처칠은 긴장 속에 이를 주시했다. 히틀러의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양 진영은 모두 , 미국과 일본이 자신에게 불리한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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