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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소련과 일본의 전쟁 위기?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0년대 내내 소련과 일본은 극동에서 간헐적으로 충돌했다. 이 충돌 중에서 소련에게 가장 위험했던 것은 32년 8월의 위기 상황이었던 것 같다.중일전쟁 발발과 더불어, 이누카이 쓰요시 내각에서 소련과의 전쟁을 주장하는 일본 육군 황도파의 대부, 아라키 사다오가 육군대신을 역임할 동안(1931-1934)...

[36년]이시하라 간지가 중일전쟁을 반대한 논리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이시라하 간지의 논리]1936년 여름, 2/26사건 이후 육군내 황도파에 대한 숙청이 한 창인 상황에서,이시하라 간지는 통제파의 중국 진출 논리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고 한다.왜 가장 위험한 적이 전통적인 숙적인 러시아인, 이 때에 중국과의 전쟁이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한번에 두 개의 전쟁을 치르는 것은 약...

[36년]2.26 사건에 대한 소련스파이 조르게의 보고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위키백과에 따르면, 2·26 사건(二・二六事件)은1936년 2월 26일 일본 육군의 황도파 청년장교들이 1483명의 병력을 이끌고 일으킨 반란사건이다.국제사회가 이 사건에 주목했지만, 사건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한 것은 바로 소련이었고, 이는 소련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의 활동 덕분이었다. 조르게의 보고...

[39년]노몬한에서 일본 육군이 얻은 교훈은? ㅠ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노몬한 전투는 1939년 여름, 몽골과 만주국 국경 지대의 할힌골 강 유역에서 소련군 ·몽골군과 일본 제국의 관동군·만주국군이 벌인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소련군에게 참패하여 소련이 요구하는 대로 할하 강을 경계로 만주국과 몽골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역사가 콕스에 따르면, 전투에서 육군을 지휘한 고위 장교...

1945년 8월 소련의 선전포고에 대한 일본 육군의 대응은?

키신저의 경고...1945년 8월 8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이에 따라 소련의 만주 침공이 시작되었다. “사무라이들을 죽여라!”소련의 선전포고는 일본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8월 9일 나가사키에 2번째 원폭이 투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사키 원폭 보다는 소련과의 전쟁이 일본 지도부의 주된 관심사였다. 8월 9일, 오전 11시가 되기 얼...

[자료]일본 육군 해산의 변...

일본 주둔 미군 점령당국의 방침에 따라, 일본의 육군 및 해군이 해산되었고,1945년 11월 28일, 일본의 마지막 육군대신, 시모무라 사다무 대장이 다음과 같이육군 해산사 발표했다."군국주의 발생의 근본에는 육군 내의 인간들이 올바른 군인의 길이라면서 그르친 생각을 했다는 사실,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앉은 사람이 잘못된 방식으로 일했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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