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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우금치 전투의 전황...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1894년 우금치 전투의 전사자는 동학군이 2만6000명, 일본군은 단 1명이었다. 출처-박정훈, [박정훈 칼럼] 정권이 만든 원치 않는 싸움, 그래도 싸움은 이겨야 한다,조선일보, 7월 19일

1882년 제물포조약 제5조는?

"아베 신조가 동북아에서 왕따를 당했는가?"임오군란의 여파로 인해 맺어진 제물포 조약 5조, “일본 공사관은 병원(兵員) 약간을 두어 호위할 것. 병영(兵衛)를 설치 수리하는 것은 조선국이 이를 담당함, 만일 조선의 병민(兵民)이 법을 지키기를 일 년이 경과하여 일본 공사가 경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될 때에는 철병할 수도 있다" 가 일본의 한국 침략을 ...

보불전쟁의 스당 전투와 일본군?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1870년 보불전쟁의 스당전투는 프로이센군이 프랑스군을 격파한 결정적 전투였다.역사가 페인에 따르면, 스당전투가 일본의 현대전 이해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보불전쟁 승리 직후,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이 독일을 방문했다. 사절단원들은 특히 스당 전투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일본 육군의 교리가 된 "단...

1기 조선징집병 장씨의 증언...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다카시 후지타니에 따르면, 1944년에 징병된 제1기 조선 징집병 출신의 장씨는일본 군대 내부에 조선인 차별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다카시가 왜냐고 묻자, 장씨의 대답은"우리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우린 모두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죠?"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만일 그들이 우리를 넘보면, ...

[41년]일본 군사력에 대한 미국의 정보 부족?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진주만의 전야에 서양은 일본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했다. 민간인은 물론이고, 군부도 그랬다. 일본의 낯선 문자가 미국의 정보 획득에 어려움을 주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어학 장교,무관,교환 장교 등 일본통 장교의 배출을 등한시했다. 가령, 1920-1941년의 22년 동안, 미국 육군...

헌팅턴,"일본군은 정신력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국가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는 일본군의 지도부로서는 군사적 상황을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과학적 방식으로 분석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해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일본의 군사훈련은 전장에 임하는 병사들의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서 정신교육'을 강조했다. 기본적으로, 정신교육이란 일본 국가 이데올로기의 정신과 원칙, ...

"줄루 족과 일본 제국 육군의 공통점?"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줄루족 전쟁에 대한 글을 읽다가,이런 대목을 발견했다."남아프리카 부족 전쟁에서 줄루족은 1세기 동안 뛰어난 용기와 신체 능력, 많은 병력이 결정적 승리를 가져온 다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훈련이 잘 된 영국 소총수들의 단단한 대오를 상대하자 그들의 예전 방식이 결국 파멸만을 불렀다."- 핸슨, 살육과 문명, 531...

[44년]일제, 조선 출신 병사의 교육 지침은?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1944년 일본 육군 교육총감부가 발행한, <<조선 출신 병사의 교육 참고 자료>는 조선인 병사 훈련을 담당하는 일본 장교를 위한 교본이었다.이 교안은 황민으로 조선인의 자의식이 높아졌고, 따라서 이들이 대동아 실현을 위한 특별 임무를 지게 되었음을 강조하는 서문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교안의 전...

"일본 제국은 미국 흑인 해방의 구세주인가?"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전쟁 동안 일본 제국은 자신의 전쟁을 위해서 미국 내의 흑인 인종문제를 이용했다고 한다.제2차 세계대전 동안,대략 125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징병 거부로 체포당했다. 이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 반체제 성향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에 강력한 친일 정서가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미국 흑인 중산층 및 노동자층에서 ...

"육군 황도파와 해군 함대파의 관계?"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군의 군국주의화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아라키 사다오의 육군 황도파와 가토 간지의 해군 함대파의 궁합이 맞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육군과 해군의 각 파벌은 1930년대 초에 부상했다. 두 파는 이른바 "1936년 위기설"을 주장했다. 런던 해군 조약이 재협상되는 35년-36년에 일본에 대외적인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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