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일본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1 2 3 4 5 6 7 8 9 10 다음

[청일전쟁] 1894년의 일본과 국제법?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일본은 청일전쟁을 문명 대 야만의 대립으로 규정했다. 문명을 대변한다고 주장한 일본은 문명의 표준인 국제규범을 준수하려 했다. 이러한 점을 의식하여 일본의 정책결정자들은 당대에 인정되고 있었던 전쟁 관련 국제규범을 애써 준수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1894년 8월, 청일전쟁 개전 선포에 즈음하여 이토...

보불전쟁의 스당 전투와 일본군?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1870년 보불전쟁의 스당전투는 프로이센군이 프랑스군을 격파한 결정적 전투였다.역사가 페인에 따르면, 스당전투가 일본의 현대전 이해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보불전쟁 승리 직후,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이 독일을 방문했다. 사절단원들은 특히 스당 전투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일본 육군의 교리가 된 "단...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일본인들이 서양 세계의 지식의 보고를 면밀히 조사해왔고, 그들이 배운 것은 열심히 실천했다." - 영국 신문 더 타임스1894년청일전쟁의 직후에...출처-S. C. M. Paine, The Japanese Empire: Grand Strategy from the Meiji Restoration to the Pacific W...

이익, 일본의 실권자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

오늘날의 우리도 일본의 군주를 천황이라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일왕이라 해야 하는지 문제가 된다.실학파 이익의 시대에도 유사한 문제가 존재했다. 도쿠가와 막부의 실력자 정이대장군(대군,쇼군)을 어떻게 대접하고,불러야 하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도쿠가와 정권이 사용한 "대군"이란 칭호가 문제였다. 조선의 관점에서 대군은 '신하'에 해당하는 직명이었다...

[42년]일본과 전쟁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인식차?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1942년의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영국과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에 대한 인식차를 나타냈다.영국에서 1943년초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이 먼저 패망할 경우,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끝까지 싸워야만 하냐는 질문에 대해서 단지 6%의 응답자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1942년말의 워...

더글러스 맥아더의 인종주의와 일본?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맥아더는 항모 탑재의 항공기들에 의한 진주만 공격 소식을 듣고, 그는 조종사들이 "백인 용병"임에 틀림없다고 믿었다. David Reynolds , From Munich to Pearl Harbor: Roosevelt's America and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

[41년]중일전쟁과 호주,뉴질랜드...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런던의 영국 정부가 극동에서 일본과 화해에 관심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이는 영연방의 호주와 뉴질랜드의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중일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극동에서 호주 지도자들의 관심사는 중국이었고, 일본에 대항한 중국의 투쟁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일본을 중국에서 발목이 잡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

[41년]윈스턴 처칠과 프린스 오브 웨일스?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극동에서의 일본의 도발에 대한 처칠의 자신감의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중요했다. 일본인에 대한 인종적 우월감이 하나였다면, 영국 해군력에 대한 자신감이 다른 하나였다. 즉 일본이 감히 영국을 상대로 도발한다고 하더라도, 영국이 해군의 자랑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보내면, 겁을 먹고 물러날 것이라란 믿음을 총리가 가...

[41년] 처칠은 일본을 어떻게 무시했는가?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쟁 초기에 영국이 일본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일본인에 대한 영국의 인종적 비하와 관련이 있다. 영국은 열등한 아시아인종 일본이 감히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윈스턴 처칠도 마찬가지 였다. 그는 일본의 공격 가능성을 끊임없이 평가절하했고, 싱가포르 무장 강화를 위한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했다....

"미국 흑인에 대한 영국과 일본의 관점 차이는?"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대공황이 한창일 동안, 미국의 부유한 흑인 출판업자 로버트 애벗이 아내와 함께 배를타고 영국에 갔다. 이 여행은 인종적 악몽이 될 것이었다. 대영제국의 심장부 런던에 도착하자 마자, 그는 웨스트앤드의 사보이 호텔 투숙을 거절당했다. 그가 예약서를 손에 들고 갔는데도 말이다. 왜? 그가 냉정하게 들었던 말이란, 호텔은 ...
1 2 3 4 5 6 7 8 9 10 다음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