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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고노에와 이사와라 간지의 중일전쟁 논의...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고노에는 중일전쟁 초기의 일본 작전의 어려움에 대한, 이시와라 간지와의 대화를 이렇게 기록했다. 이시와라는 당시 참모본부 작전국장이었다."작년 1937년에 나는 이시와라에게 왜 작전국장이 전쟁 불확대 정책을 지지함에도, 그리고 정부 또한 평화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확대되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시와라에 따...

[일본 육군] 육군의 최고 실력자는 누구인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제국의 육군에서 3인방은 육군대신,육군 참모총장,교육총감이었고, 그들에게 신임 육군대신 결정 권한이 있었다. 3명의 합의가 있어야만 했다.3명 중에서, 육군 참모총장이 실권자였다. 그는 항상 2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참모총장에게 교육총감 임명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조 히데키의 심복이었던...

[31년] 육군대신 미나미 지로의 유체이탈 화법?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정상적인 환경에서 일본 육군대신의 임무란 군기를 유지하고, 특히 자신이 봉사하는 정부의 무력 타도 음모를 차단,억제하는 것이다. 1930년대 초의 일본 사회의 특수성은 군부 쿠데타를 바라보는 군당국의 시각에 존재했다. 가령, 우가키 가즈시게의 후임으로 1931년 4월 14일에 육군대신에 취임한 미나미 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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