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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캐넌, 히틀러와 스탈린의 차이는?

키신저의 경고...1946년 2월 22일 조지 캐넌이 이른바 '긴 전보'를 발송하면서, 소련 외교정책의 본질이 안보라기 보다는 공산주의 확산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있다는 주장이 미국에서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소련의 팽창을 위협으로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조지 캐넌은 스탈린의 위협을 히틀러의 그것과 구분했다. 후자가 세계정복을 위한 구체적인 시간계획을 가진 ...

조지 캐넌,"소련의 위협은 나치 독일과 어떻게 다른가?"

키신저의 경고...냉전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은 1946년 2월 22일, 소련 주재 대리 대사 조지 케넌, 긴 전보 발송이었다.이 전보를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미국의 봉쇄정책이다. 봉쇄정책은 소련에 대한 예방전쟁과 유화정책 모두를 지양하고자 했다. 캐넌은 나치 독일의 위협에 대해서는 전쟁이 필연적이었지만, 소련의 위협은 전쟁으로 맞설 필요는 ...

키신저, 데탕트란 무엇인가?

키신저의 경고...키신저는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우리는 긴장 완화를 소련에 대한 양보로 간주하지 않았다. 데탕트에 대한 우리만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국익의 관점에서 그것을 재정의 하려고 단지 노력했을 뿐이다. 데탕트는 우호가 아니라, 적들간의 관계를 위한 전략으로 정의된다.” Kissinger...

[트럼프]유화정책과 데탕트 사이에서...

트럼프,"테러범을 고문하지 않겠다!"트럼프가 틸러슨을 차기 미국 국무장관에 임명했다고 한다.석유 재벌이자, 러시아 푸틴의 친구인 틸러슨이 국무장관이 되면서, 트럼프 시대의 미러관계가 오바마 시대의 냉전 청산을 도모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트럼프의 미국은 과거에 닉슨이 그랬던 것처럼, 미러관계를 대치에서 협력의 시대로의 전환을 주도할 것인가?이를 위해서...

키신저, "민주주의가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키신저의 경고...민주주의가 평화를 담보한다는 주장이 있다. 즉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에서의 민주화가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영구평화론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키신저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평화 보다는 갈등을 보다 심각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제레미 수리의 해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닉슨과 키신저는 인간본성과...

"1936년, 히틀러는 여전히 정상인처럼 보였다."

독일의 라인란트 재점령-1936년 3월 7일<라인란트>1936년 3월 7일, 히틀러의 독일이 라인란트를 재점령했다. 라인란트 재점령을 통해서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과 로카르노 조약을 동시에 위반하면서, 라인란트에 독일군을 주둔시켰다. 라인란트는 독일서부에 라인강을 따라 있는, 비무장지대였다. 베르사유 조약과 1925년의 로카르노 조약...

"히틀러를 막는 것은 왜 어려운가?"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하나 혹은 하나 이상의 경쟁,적대 세력에 대한 외교정책 수립의 문제에서 그 세력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성격에는 제국주의와 현상유지 세력이 있다.히틀러의 경우, 1933-1938년 뮌헨회담까지 현상유지 세력으로 간주될 여지가 있었고, 유화정책은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1939년 ...

"유화정책이 정당한 경우는 언제인가?"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한스 모겐소는 국가간의 정치에서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역사적 대참사였지만, 그렇다고 유화정책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유화정책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기 이전에, 상대국 혹은 적국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적의 성격유형은 제국주의와 현상유지가 있다. 제국주의가 팽창을 통한 정복을 ...

키신저,"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히틀러 독일의 군사 강대국으로의 부상에 대해서]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재무장이 진행되도록 방치했던 것은 문자 그대로, 그들은 달리 어떻게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집단안보와 국제연맹을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프랑스는 너무나 의기소침해서, 자신의 예감에 따라 스스로 행동에 나설 수 없었다 : 프랑스...

메테르니히, 혁명세력과의 평화는 가능한가?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키신저의 박사논문에 따르면, 메테르니히의 선견지명이란 프랑스가 혁명세력임을 분명히 했고, 혁명세력과는 어떠한 평화도 가능하지 않다는 원칙을 일찌기 견지했다는 점에 있었다. ; 그러나 메테르니히가 18세기 귀족으로서 얼마나 전형적이었는지와는 무관하게, 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그들의 희망 섞인 평가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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