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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히틀러 독일의 군사 강대국으로의 부상에 대해서]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재무장이 진행되도록 방치했던 것은 문자 그대로, 그들은 달리 어떻게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집단안보와 국제연맹을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프랑스는 너무나 의기소침해서, 자신의 예감에 따라 스스로 행동에 나설 수 없었다 : 프랑스...

메테르니히, 혁명세력과의 평화는 가능한가?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키신저의 박사논문에 따르면, 메테르니히의 선견지명이란 프랑스가 혁명세력임을 분명히 했고, 혁명세력과는 어떠한 평화도 가능하지 않다는 원칙을 일찌기 견지했다는 점에 있었다. ; 그러나 메테르니히가 18세기 귀족으로서 얼마나 전형적이었는지와는 무관하게, 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그들의 희망 섞인 평가에 편...

테일러,"히틀러의 외교정책은 잘못이 없었다."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영국 역사가 테일러의 제2차세계대전의 기원은 이 전쟁의 기원에 대한 모든 진지한 연구가 출발해야 할 학문적 업적임이 분명하다.하지만, 이 책은 히틀러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 만큼이나, 영국 현실주의의 한계도 보여준다. 특히 1940년대 영국 현실주의가 왜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주었는지 이해하는데 도...

전후 영국 현실주의의 시련?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1930년대의 유럽 현실주의이안 홀에 따르면, 1940년대와 1950년대 영국 현실주의는 30년대의 과오 때문에 시련을 맞이했다고 한다.1940년대와 1950년대 현실주의는 전체주의와의 관계 그리고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을 지지한 전력 때문에 시련을 겪었다.1930년대에, 전체주의 외교정책과 유화정책이 '현실주의'...

칼 포퍼, 현실주의의 문제점은?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현실주의의 한계란 무엇인가? 조지 오웰의 비판처럼, 현실주의가 불쾌한 현실을 수동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패배주의로 귀결될 수도 있다.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다시말해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특수한 수단 혹은 난폭한 결정도 불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사야 벌린과 루이스 네이미어

구글 지식의 한계? 루이스 네이미어루이스 네이미어는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다보면 자주 언급되는 영국의 역사가이다.이사야 벌린 평전을 읽다가, 벌린과 루이스 네이미어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는 대목을 발견했다.1930년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올소울즈 칼리지는 존 사이먼, 핼리펙스 경, 제프리 도슨 등의 영국 유화론자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그리고 ...

케인스와 영국의 유화정책...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유화정책][케인스]"케인스도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을 지지했을까?"영국의 유화정책 지지자들은 베르사유가 독일을 너무 가혹하게 처벌했기 때문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더불어 명백했던 것은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의 수정을 원하며, 독일의 불만을 수용하는 것이 정통성있다고 인정되는 이상, 영국 외교정책이 이를 반대할 ...

E.H.카, 뮌헨협정에 대해서 2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E.H. 카가 20년의 위기에서 개진한 다음 주장은, 유화정책을 지지하는 현실주의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 즉 후발세력의 요구를 기득권 세력이 양보를 통해 타협하면서, 국제문제를 전쟁없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뮌헨협정 이래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독재자들의 태도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히틀러는 독일이 ...

E.H.카, 뮌헨협정에 대해서...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이후에 삭제되었지만 <20년의 위기> 초판본에는 있던 한 문단에서, 카는 뮌헨협정을 국제문제의 평화적 변화의 사례라고 평가했다고 한다.카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1938년 9월 29일에 뮌헨협정의 타결로 귀결된 협상은 중요한 국제문제가 평화적 변화 절차에 의해 해결된 최근의 가장 좋은 교섭이었다. 힘이라는...

"어떻게 선한 정책이 악한 결과를 초래할까?"

키신저의 경고...한스 모겐소에 따르면, 정책의 선택의 기로에 놓인 정치인이 선한 동기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선함 자체가 정책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선한 동기가 악한 결과를 초래한 대표적 사례가 바로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이라는 것이다.세계를 개선하려는 정치가들의 야심찬 의도 때문에 오히려 사태가 악화된 사례가 얼마나 많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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