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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은 언제 대 소련 타협론자로 전향했을까?

적어도 1917년부터 1938년까지 ,영국에서 윈스턴 처칠만큼 소련과 볼셰비즘을 증오하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처칠은 총리로 취임하기 몇년전부터, 그의 소련관을 수정, 러시아인과의 협상할 수 있다는 <놀라운> 입장변화를 보여준다.즉 뮌헨협정 직후인, 1938년 10월, 그는 체임벌린 총리의 강력한 반대에도 ...

무바라크의 유화론?

지난 이집트 혁명에서, 주요 대규모 시위 국면에서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여러번 대국민 유화조치 혹은 양보를 약속했다.이를 통해, 이집트 전 대통령은 국민의 분노가 잦아들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이지만,무바라크가 양보할 수록, 국민의 분노는 높아졌고, 그 결과는 그의 사임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는 역사적으로 보면,1930년대 영국의 유...

"프랑스 외교를 겁쟁이로 만든 것은 영국!"

 <전간기 프랑스 외교의 주요 관심사?>역사가 로버트 영 Robert Young 에 따르면,전간기 프랑스 외교의 주요관심사는 <장기전>과 <영국>이었다고 한다. 즉 당시 프랑스의 외교 와 군사 전략은 <장기전>개념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선, <장기전>은 1918년에 끝난 전쟁...

"왜 영국의 유화가 독일의 불만만을 고조 시켰을까?"

전간기 영국-독일 관계를 보면... ^^전간기 외교사를 읽다보니,이해가 안가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그것은 전간기, 영국의 유화정책과 그 효과에 관한 것이다. 왜 영국이 대독 유화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측의 불만은 고조되었을까 라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갈등상황에서, 한쪽이 유화로 나오면, 상대방은 불...

전간기 영국-독일 관계를 보면... ^^

영국의 대독일 유화정책은 베르사유 조약의 잉크가 마르자 마자시작된 것이 분명하다.영국은 유럽에서의 독불간의 세력균형을 유지한다는 원칙하에,패전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지나치게 약화되는 것을 막고,독일을 대륙에서 프랑스와 대등해지게 만들고, 동쪽으로부터의 소련 볼셰비즘의 위협에 대한 방패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그리고 주요 국면에서 영국은 독일에게 ...

전쟁에 대한 체임벌린의 인식 변화...

체임벌린은 어떤 대독일 정책이 대영제국을 위해, <최선이고, 확실한> 것인지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그의 대독정책은 세가지의 주요사건을 거치면서 , 변화한 것으로 해석된다.우선, 유화정책을 통해 <전쟁을 막아야하고,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체임벌린이 전임 스탠리 볼드윈으로 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

유화정책에 대한 체임벌린의 변명...

"어떤 방식이든, 어떤 과정을 통해서이든, 만약 우리가 1938년에 전쟁을 시작했더라면, 그 결과가 더 나빴을 것이라는 것만큼은 명명백백하다.물론, 역사적 심판을 예견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지만,만약 관련된 모든 기록들을 검토해 본다면,내가 처음부터 우리의 군사적 취약성을 알고 있었고, 만약 전쟁을 막을 수 없다면, 그것을 연기시키기 위해최선을...

영국 귀족들의 대독 유화론 혹은 대독협력...

"만약 나치독일이 영국을 점령했다면?"역사가 존 루카치의 지적에 따르면, 최소한 1940년 5월까지, 영국의 상당수의 귀족들이 히틀러에 동조하는 기색을 꽤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고 한다.이들은 히틀러가 공정하건 불공정하건 간에, 어떤 기준에서 봐도 공산주의의 유럽 석권을 막는데 가장 단호한 인물이라 보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파시스트, 독일에 열광하는 ...

체임벌린의 한마디...

네빌 체임벌린의 결정적인? 한마디..."내가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듯 하다."- 네빌 체임벌린1939년 8월 23일히틀러와 스탈린이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한 날에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로, 당시 런던 주재 미국 대사였던, 조셉 케네디에게 했다는 말.- 케네디 대사에 따르면, "그는 모든 노력...

[영국]유화론자 와 유화론 반대자의 차이는?

앤드루 로버츠의 지적에 따르면, 제2차세계대전 직후 영국에서,유화론자 와 유화론 반대자 집단은 다음과 같은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유화정책에 반대하는 원로들은 - 더프 쿠퍼, 앤소니 이든, 해롤드 맥밀란, 윈스턴 처칠, 로저 케이즈, 루이스 스피어 등 은 모두 참전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반대로, 유화정책에 찬동하는 거국내각 인사들 - 볼드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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