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영불관계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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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공포의 시작?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공포는 전간기의 개막과 동시에 시작된 것인가?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베르사유 조약에서 승전국 프랑스는 독일의 장래 위협을 막는 조치를 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세력은 프랑스의 강대국 지위를 위협하는 잠정적 존재론적 위협이 되었다. 1920년, 프랑스 정보부는 ...

"샤를 드골 시대의 영불관계는?"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자유 프랑스 시절의 독립투사 샤를 드골의 기록을 읽다보면,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샤를 드골에 대한 천대에, 드골이 분노를 느끼는 것에 대해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다.그런데, 이 시절의 기억과, 더 나아가 1954년 디엔비엔푸 위기에서 미국과 영국이 프랑스로부터 등을 돌린 것에 대한 기억이샤를 드골의 앵글로-색슨족에 대한 본능...

[44년]영국이 프랑스 식민지 부활을 지지한 이유?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1944년의 시점에서,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식민지 부활을 두고, 이에 반대한 미국과 이에 찬성한 영국의 정책에 차이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전후 세계를 기획하면서 영국 정책결정자들이 프랑스 식민지 부활을 지지한 것은 전후의 유럽 질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전후의 예상 시나리오는...

"루스벨트는 샤를 드골을 제거하려했다."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전쟁 동안, 미국의 루스벨트가 프랑스의 샤를 드골을 노골적으로 혐오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의 압력 속에서, 그나마 드골을 보호한 것은 영국의 처칠이었다. 동맹이 골칫거리 드골은 전쟁동안 처칠이 짊어져야 할 "로렌의 십자가" 였다.출처- 중앙일보, 1971.02.162차 대전 당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자유...

영국과 프랑스의 상대국 관련 농담...ㅎㅎ

[영불관계]프랑스에 대한 영국측 농담악마가 연옥에서 죽은 자들을 맞아들이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도착했는지 확인했다. 그는 출석을 불렀다. 우선, 그는 법률가들이 도착했는지 물었다. 그리고 간음한 자들을 불렀고, 그리고 그는 나치들이 혹시 도착했는지 알고 싶었다.마지막으로 그가 물었다."프랑스인들도 도착했는가?"영국에 대한 프랑스측 농담사고와 재앙간의...

18세기 영국의 反-프랑스 시민단체의 경제학?

17,18세기 영국의 반불 反佛 감정 Francophobia[애국심]반-갈리아 협회 The Anti-Gallican Society 는 1745년 영국에서 영국으로의 프랑스 상품 유입에 반대하고, 영국에서의 불류 佛流? 즉 프랑스 문화의 영향력 확산에 반대하기 위해서 결성된 애국단체였다. 1751-1753년까지 협회는 훌륭한 영국산 제품에 대해 상을 수여...

17,18세기 영국의 반불 反佛 감정 Francophobia

<사자와 수탉 상- 블렌하임 궁전(Blenheim Palace) 영국- 영국을 상징하는 사자가 프랑스의 상징 수탉을 집어삼키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블렌하임 궁은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원한 윈스턴 처칠이 태어난 곳이다.>반불 감정反佛感情, Francophobia반불 감정이란 프랑스, 프랑스인, 프랑스 문화, 역사 및 프랑스어 등 프랑스와 연계...

"영불관계의 새로운 청사진?" ^^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데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의 악수도 거부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날 회의 시작전 사르코지에게 악수를 청하려 손을 내밀며 다가갔지만 사르코지는 이를 못 본 척 외면하며 딴 짓을 했고 결국 머쓱해진 캐머런은 쓴 웃음과 함께 손을 거둬 들여야 했다고 한다.이 정도면, 제2차세계대전 동안 프랑스의...

[영불관계]"나폴레옹의 마지막 복수다!" ^ ^

[프랑스][영국]"나폴레옹의 마지막 복수!"영국 런던 - 타블로이드 <데일리 익스프레스>2010년 11월 2일"영국군이 프랑스의 지휘하에 들어가다!"라고 영국의 타블로이드 <데일리 익스프레스>지가 일면보도 했고, 이는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최근에 조인된, 새로운 국방협력조약을 논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난 포클랜드 전쟁때 다수의...

샤를 드골의 영국 혐오에 대해서…

<샤를 드골의 영국 혐오에 대해서…> 처칠이 프랑스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드골은 영국을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샤를 드골의 아버지인, 앙리 드골은 친영파가 아니였고, 다른 당대의 프랑스인들처럼, 드골에게 영국은 <믿을 수 없는 영국놈들>의 나라였다. 드골은 아버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만큼, 이런 영국에 대한 태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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