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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러 대결의 세계사?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19세기에 유럽, 중동, 중앙아시아 그리고 극동에서의 영러대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세계 무대라는 거대한 장기판에서 영국과 러시아는 어떤 양상의 대결을 한 것인가?중앙아시아의 영러 대립은 3차례의 주요 긴장 국면을 조성했고, 1855-7, 1878, 1885년, 이는 유럽에서의 영러 사이의 전쟁 혹은 긴장과 ...

1882년, 백춘배, "러시아가 조선에 위협인 이유는?"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근대 한국에게 러시아는 무엇이었는가? 1880년 김홍집이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가지고 와서 고종에게 충격을 주었다. 조선 독립의 가장 주된 위협은 러시아라는 주장이었다.러시아 위협의 실체 파악을 위해서 조선 정부는 백춘배를 연해주에 밀파했고, 1882년 그가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다. 1882년...

1857년 인도 세포이 반란과 아이훈 조약?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인도의 역사와 극동의 러시아-중국 관계사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19세기 동안 영국과 러시아가 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경쟁했다. 경쟁의 목표물은 인도였다. 그렇다면, 세포이 반란과 극동에서의 아이훈 조약은 어떤 관계였는가? 인도 세포이 반란이 발발하자, 러시아의 반응은 이랬다. “인도...

[1885년]거문도 사건이 영국에게 준 교훈은?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1885년 4월 영국은 조선의 거문도를 무단 점령했다. 이는 1884년 12월, 1885년 1월의 이른바 조러 밀약설, 조선이 자신의 보호를 대가로 러시아에게 부동항을 제공할 것이란 소문에 대한 영국의 대응이었다. 영국은 거문도 점령을 통해 러시아 극동함대의 남하를 차단하려 했다. 이언 니시에 따르면...

[1875년] 일본의 사할린 포기와 운요호 사건?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한양대의 최문형 교수의 글을 읽다보면, 그 시각의 넓음에 자주 놀라게 된다. 가령, 운요호 사건에 대한 평범한 연구는 사건 발생의 지점인 강화도 일대에만 시선을 집중한다.하지만 최문형은 일본이 사할린에서 한 일을 동시에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본은 1875년 9월 19일 사할린의...

제국의 방대함의 약점인가?-1895년의 대영제국

미국은 제국인가, 패권국인가?폴 케네디에 따르면, 19세기말 대영제국의 정치가들은 다음 난관에 직면했다. <대영제국의 위기>“19세기 후반의 영국은 세계 강대국을 시도하던 때가 확실히 아니었다.”영국 정치가들은 문자 그대로 세계적인 차원에서 외교적 • 전략적인 재주를 부렸다. 예컨대 대단히 중대한 시기였던 1895년 영국 내각은 청일...

[대영제국]보어 전쟁과 의화단의 난의 의미는?

미국은 제국인가, 패권국인가?<대영제국의 몰락>“보어 전쟁과 의화단의 난”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보어전쟁8)과 의화단의 난은 영국의 대일 소극정책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의화단의 난은 동아시아 질서에 두 가지의 중요한 동인을 제공하였다. 첫째는 영국과 일본의 동맹을 가시화 시키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둘째는, 러시아의 세력권 확대...

"크림전쟁에서 프랑스가 웃었지만..."

"크림 전쟁이 오스트리아에게 재앙이었던 이유는?""크림전쟁의 결과는?"크림전쟁 Crimean War 이란, 크림 반도를 중심으로 러시아가 영국, 프랑스, 오스만 제국,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과 벌인 전쟁(1853. 10~1856. 2)이었다. 이 전쟁은 러시아의 패배로 끝났다. 크림 전쟁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나폴레옹 전쟁 종결 이후 확립된 유럽협조체제...

"19세기 영국에게 오스트리아란?"

세력균형 이론 a balance of power 19세기 동안, 오스트리아의 보존은 영국외교의 중요한 목표였다. 18세기에, 말보로 공작, 카트레트 경 John Carteret, 2nd Earl Granville 그리고 피트는 프랑스가 오스트리아를 약하게 만드는 일을 막기위해서 몇차례의 전쟁을 벌였다. 19세기에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의 적의를 전보다 덜 ...

러시아의 대마도 점령-1861년

러시아는 해군 비실레프 함장 휘하의 포사드니크 호를 출동시켜,1861년 3월 13일에 일본 대마도를 점령했다.이에 일본 정부는 즉각 러시아영사에게 항의하는 한편,주일 영국 총영사 앨콕 경은 영국의 아시아 함대 사령관 호프 경과 2척의 군함을 이끌고 대마도로 대응 출동했다.즉, 영국이 일본편에서, 대마도에서 무력시위 하면서 철수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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