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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전승기념행사에 자유 폴란드군이 배제되다!"

 <전후 런던 폴란드인들의 운명>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서양 연합군 소속으로 전투에 참여했던, 대략 20만명의 영국 주재 폴란드인들은 난해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폴란드로 돌아가야 하는가? 소련에게 국토를 빼앗기고, 소련의 지배하에 있는 폴란드로 말이다. 아니면, 영국 또는 다른 나라에서 후일을 기약해야만 하는가? 이...

처칠 부인의 한마디... ^^

"앨런 브룩 총장이 총리와 어떻게 잘 화합하여 지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그는 오후 내내, 소파에 앉아서,"안 됩니다! 각하,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라고만 되풀이하고 있더군요."-처칠 부인앨런 브룩이 육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한 직후,그가 총리의 시골 저택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라 한다.- 보통, 영감과 용기는 긍정적이지만, 앨런 브룩과 처칠 관계에서,처...

"카틴 사건에 대한,영국 정부의 고민은?"

 <카틴 사건에 대한, 오웬 오말리의 보고서>카틴 사건만큼, 전시 영국-소련 관계를 상징하는 것은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오웬 오말리 Owen O'Malley , 폴란드 임시정부 주재 영국대사의 카틴 관련 보고서들이다. 그는 1943년 5월 24일 자신의 상관인 앤서니 이든 외무장관에게 첫...

"리더십의 관점에서 본, 처칠,스탈린 그리고 히틀러"

아서 브라이언트의 <워 다이어리>에 따르면,영국의 제2차세계대전에서 , 처칠 과 몽고메리 만큼이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앨런 브룩, 영군 육군참모총장이라 한다. 역사가 브라이언트에 따르면,처칠 옆에서, 대전략을 수립하고, 조용하게 총리를 보좌하고, 처칠의 모험적 군사작전들에 제동을 건, 앨런 브룩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덩케르크 작전을...

"프랑스 외교를 겁쟁이로 만든 것은 영국!"

 <전간기 프랑스 외교의 주요 관심사?>역사가 로버트 영 Robert Young 에 따르면,전간기 프랑스 외교의 주요관심사는 <장기전>과 <영국>이었다고 한다. 즉 당시 프랑스의 외교 와 군사 전략은 <장기전>개념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선, <장기전>은 1918년에 끝난 전쟁...

"왜 영국의 유화가 독일의 불만만을 고조 시켰을까?"

전간기 영국-독일 관계를 보면... ^^전간기 외교사를 읽다보니,이해가 안가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그것은 전간기, 영국의 유화정책과 그 효과에 관한 것이다. 왜 영국이 대독 유화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측의 불만은 고조되었을까 라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갈등상황에서, 한쪽이 유화로 나오면, 상대방은 불...

전간기 영국-독일 관계를 보면... ^^

영국의 대독일 유화정책은 베르사유 조약의 잉크가 마르자 마자시작된 것이 분명하다.영국은 유럽에서의 독불간의 세력균형을 유지한다는 원칙하에,패전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지나치게 약화되는 것을 막고,독일을 대륙에서 프랑스와 대등해지게 만들고, 동쪽으로부터의 소련 볼셰비즘의 위협에 대한 방패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그리고 주요 국면에서 영국은 독일에게 ...

"전간기 영국외교의 치명적 오판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20년 동안의 유럽외교사에서 일반적으로 지적하기를영국은 독일에 대한 회유를 설득해 왔다면, 반면 프랑스는 독일에 대해 대항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역사가 마크스 Sally Marks 는 그의 논문 <1918년 과 그 이후>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영국은 1919년부터 유럽에서의 세력균형의 지렛대라는, 자국의 전통...

체임벌린과 처칠의 엇갈리는 운명...

네빌 체임벌린은 1937년 5월에 영국 총리가 되었다. 영국의 대 독일 유화정책은 이미 전임총리 스탠리 볼드윈 시절부터 이미 뚜렷하게 나타났다.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가장 요란하고 완강하게 반대한 인물이 바로 윈스턴 처칠이었다. 역설적인 것은, 그의 정치역정 중에서 처칠에 대한 정치적 인기 와 평가가 최저의 바닥을 친 것이 바...

"극동에서 본 체임벌린의 유화정책?"

네빌 체임벌린의 대독 유화정책을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떨까?체임벌린은 1937년 5월에 영국 총리에 임명되었고,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중일전쟁을 도발한 것은 1937년 7월 7일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고 본다.당시도 여전히 체임벌린이 통치하던 영국은 대영제국이었고, 제국의 총리라면 대외정책을 유럽만이 아니라, 전체 세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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