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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의 대영제국에 대한 솔즈베리의 불안은?"

<솔즈베리 경>19세기말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제국의 영광의 정점에 있었다. 당시 영국의 공식적 외교정책은 영광스러운 고립 splendid isolation 정책이었다. 영국은 충분히 강했기 때문에, 동맹이라는 속박이 불필요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솔즈베리 경이 세번째의 총리 임기를 보낼 무렵(1895-1902), 대영제국은 세계 도...

"영국의 파머스턴이 헝가리혁명에 반대한 이유는?"

세력균형 이론 a balance of power 1848년 헝가리혁명에 대해서, 러시아만큼은 아니지만, 영국도 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당시의 영국의 외무장관은 파머스턴 Henry John Temple, 3rd Viscount Palmerston 이었다. [그는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 중 한명이었다. 파머스턴 경은 영국 정치인으로 19세기 중반...

19세기의 유럽의 세력균형의 두가지 모델

세력균형 이론 a balance of power 키신저에 따르면, 19세기 유럽에서, 두가지의 세력균형 모델이 존재했다 : 파머스턴과 디즈레일리식의 영국식 모델과 비스마르크식 모델. 영국식 모델은 스스로 개입하기 이전에, 세력균형이 심각하게 손상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며, 항상 약자 편에 서는 것이다.  반면 독일식 모델은 중복되는 동맹체제를 ...

"전간기 영국외교의 치명적 오판은?" (2)

"전간기 영국외교의 치명적 오판은?"키신저에 따르면, 베르사유 조약 이후, 전간기 영국외교의 오판은 다음과 같았다. 영국 외교정책은 프랑스가 너무 강해졌다는 잘못된 믿음에 기반하고 있었고, 영국과의 동맹은 프랑스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라 계산했다는 것이다. 영국 지도자들은 사기가 저하된 프랑스가 잠재적으로 유럽의 지배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라 간주하고, ...

"19세기 영국에게 오스트리아란?"

세력균형 이론 a balance of power 19세기 동안, 오스트리아의 보존은 영국외교의 중요한 목표였다. 18세기에, 말보로 공작, 카트레트 경 John Carteret, 2nd Earl Granville 그리고 피트는 프랑스가 오스트리아를 약하게 만드는 일을 막기위해서 몇차례의 전쟁을 벌였다. 19세기에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의 적의를 전보다 덜 ...

"세력균형에 대한 토리당과 휘그당의 입장차이?"

세력균형 이론 a balance of power [18세기 영국외교][세력균형][토리당][휘그당]세력균형에 대한 토리당과 휘그당의 입장차이?윌리엄3세 (재위 : 1689 – 1702) 통치 이후, 영국여론은 유럽 대륙에서의 세력균형이 영국외교의 주요 관심사라는 점을 인정했다. 즉 대륙의 평화가 영국의 번영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고, 영국외교는 평화...

[영국과 유럽]"사랑없는 강제결혼의 비극?"

[유럽]"영국이여, 안녕!"[영국과 유럽연합]강제결혼의 실패독일 주간지 <슈피겔> 보도2011년 12월 10일볼프강 칸덴 Wolfgang Kaden브뤼셀의 정상회담의 결과가 유럽연합에 나쁜 것인가? 전혀 아니다. 영국은 단 한번도 유럽 통합에 헌신한 적이 없고, 현재 추진중인 재정통합의 강화계획은 영국이 없는 편이 더 좋다고 <슈피겔&g...

[자료]알렉산더 캐도건 Alexander Cadogan -외무부 차관...

영국의 관리. 1884년 11월 25일- 1968년 7월 9일1938년, 그는 외무부 차관에 임명되어, 1946년까지 이 직위에 머무르게 된다. 이같은 캐도건의 장기간의 차관직 수행은 제2차세계대전 동안 그를 영국 대외정책의 중심적 인물들 중 한명으로 만들게 된다. 특히 그의 일기는 매우 가치있는 기록이며, 인간과 그의 인생에 대한 날카로운 감...

[자료]소련-폴란드 전쟁, 1920년

소련-폴란드 전쟁 (1919년 2월-1921년 3월) 은 제1차세계대전의 결과물들 중의 하나다. 소비에트 러시아와 폴란드 제2공화국간의 국경선이 베르사유 협정에서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이 무력 갈등은 2가지 목적을 가지는 것이었다 : 정치적으로, 소비에트 러시아는 폴란드 공산화를 통해, 소비에트 헝가리와 독일 공산주의자들과의 연결을 ...

스트레인지 경,"독일이냐 소련이냐!"

"독일이 지배하는 것보다 러시아인들이 지배하는 것이 낫다."- 윌리엄 스트레인지 경영국1943년 5월- 이는 영국 외교의 참으로 잔인한 계산이었다.소련의 힘이 압도적이 되면서, 영국은 전후 유럽을 구상하면서,필요하다면,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지배를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영국은 동유럽에 대해, 이상주의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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