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앤서니이든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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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히틀러가 이든에게 주장한 것은?

<앤서니 이든>1934년 초, 독일과의 화해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던 영국 총리 램지 맥도널드는 히틀러의 독일과의 군축을 추진했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양국관계의 데탕트의 증거로 군축을 실천하자는 것이었다.히틀러의 의중을 살피기 위해서, 젊은 시절의 앤서니 이든이 나섰다.  <1934년>2월,앤서니 이든이 베를...

[54년]디엔비엔푸 전투와 영국?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디엔비엔푸 함락 소식을 알리는 파리의 신문- 르 파리지앙, 1954년>1954년, 길었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막바지에 디엔비엔푸 전투가 있었다. 미국은 이미 이 전쟁에 깊이 개입했다. 프랑스 전비의 3/4을 담당한 것은 미국이었다. 아이젠하워는 영국에게 인도차이나에 대한 단호한 행동을 주장했다....

[54년]디엔비엔푸 전투와 주요 관련국들의 입장?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제네바 회담 -1954년>냉전의 주요 당사국들인 미국,영국,소련,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분쟁을 외교를 통해 해결하도록 결정한 것이 1954년 1월말-2월초의 베를린 4개국 외상회담에서 였다. 베를린 회담의 승자는 프랑스였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외무장관 조르주 비도는 제네바 회담에서 인도차...

54년 제네바 회담과 균형자 영국...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디엔비엔푸 이후의 인도차이나의 질서와 안정을 토론한 1954년 제네바 회담을 보면,20세기 영미 관계가 동맹관계를 넘어서는 특별한 관계였다는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영국의 앤서니 이든과 미국의 존 포스터 덜레스가 충돌했다. 이든이 공산주의자와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이었다면, 덜레스는 협상불가론을 주장했고...

[52년]한국전쟁과 베트남 그리고 영국의 홍콩?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동아시아의 냉전- 1950년 9월>아시아의 냉전과 미국,영국,프랑스의 동상이몽.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일 동안,프랑스는 중국이 이 참에 전선을 남부인 베트남으로 확대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고,한국과 베트남에서의 중국의 공세에 맞서, 영국은 중국의 여의주, 홍콩의 안전에 대해 고민했다.1952년 초, 중국의 ...

홍준표,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대해서...

연합뉴스 기사, 홍준표 "1919년 건국은 北 의식한 것…남한정부 정통성 부인" (8월 16일)에 따르면,홍준표 대표가 16일 문재인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고 한다.그는 "2차 대전 직전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히틀러의 평화공세에 속아 대독 유화정책을 썼다. 반면 윈스턴 처칠은 대독 강경정책을 천명했다"며 "요즘 국제정세를 볼 때 대...

"히틀러와 나세르의 차이는 무엇인가?"

키신저의 경고...<나세르>서양 연합국이 히틀러의 독일을 제때 견제하지 못해서 당한 재난이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이라는 유화정책의 교훈은 전후 국제정치의 상식이 되었다.전후 국제정치에서 히틀러 2세 처럼 보이는 독재자들의 행동에 대해서 서양 지도자들은 일반적으로 강경책을 선호했고, 이는 뮌헨의 교훈에 따른 것이었다.하지만, 1956년 이집트...

앤서니 이든의 한마디...

“세 사람 중 스탈린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고 또 대단히 터프한 협상가다. 처칠 총리는 이런 문제에서 너무 감정이 앞서고,루스벨트 대통령은 애매모호하면서 다른 지도자들에 대한 질투심이 많다.” ""처칠은 말하기를 좋아했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으며, 자기의 발언 차례를 잘 기다리지 못했고 차례가 돌아오면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교...

스탈린-앤서니 이든 회담-1941년 12월...

스탈린식 배짱외교 란? ^ ^12월 16일-20일, 소련의 스탈린 과 영국의 앤서니 이든의 회담: 스탈린은 다음과 같은 소련의 전쟁목표를 제시했다. 이것은 1940년 11월, 몰로토프가 베를린에서 히틀러와 리벤트로프에게 제시한 것과 내용상으로 동일했다.

1941년 여름, 극동의 일본에 대한 처칠의 입장은?

1941년 여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주된 고민은 극동문제 였다고 한다. 즉 당시 극동에서, 대영제국에 대한 일본의 위협이 고조 중이었던 것이다. 독일은 러시아와 일전에 돌입해서, 당분간 영국에게 심각한 직접적 위협을 가할 수 없었고, 또한 북아프리카 주둔 영국 지상군이 이곳에서 추축군 군대에서 맞서 이길 수도 있다고 희망했던 처칠에게, 만약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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