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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타 도시로,"미국 전쟁은 미친짓이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아라키 사다오와 오바타 도시로의 황도파가 육군에 건재했다면, 일본이 무모하게 미국과 전쟁하는 일은 없었을까?오바타는 청년장교 시절 러시아에서 장기간 체류했다. (1915년 5월-1918년) 유럽에서 1차대전과 러시아혁명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미요시 요시다카는 오바타가 배운 것을 이렇게 정리했다. “오바타 ...

"2-26 사건과 태평양전쟁의 기원?"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가타야마 모리히데, <미완의 파시즘>을 읽다가,황도파의 중심인물 오바타 도시로의 전쟁사상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기타야마에 따르면, 아라키 사다오와 오바타의 황도파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갖지 못한 나라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당분...

[통제파] 일본 파시즘과 혁신 우파?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나가타 데쓰잔- 일본 육군 통제파의 대부, 그는 미래지향적 파시즘을 주장하는 혁신 우파였다.>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 영화에서,칼을 빼어들고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돌격하는 일본군을 보면서, 한숨을 들이쉰다.야, 저게 파시스트 일본 군대의 참모습인가? ㅠㅠ 기관총을 총검술로 이길 수 있...

[일본 군국주의] 2·26 사건과 히로히토의 분노?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6년 2월 26일의 이른 아침, 일본 육군 1사단 병력 1400명이 도쿄의 주요 목표물을 동시다발로 공격했다. 여기에는 고위 정부관리, 육군성 그리고 도쿄 경시청이 포함되었다. 6명의 주요 테러대상 고위 정치인들 중에서 내대신(内大臣) 사이토 마코토(斎藤実), 대장대신(大蔵大臣) 다카하시 고레키요(高...

[33년]일본의 신병대 쿠데타 모의 사건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아라키 사다오의 일본에서 각종 쿠데타 음모로 바람잘 날이 거의 없었다.신병대 사건 Shimpeitai Incident (神兵隊 事件), Heavenly soldiers1933년 7월일본 경찰이 신병대 사건을 적발, 주요 가담자들을 체포했다.신병대 사건은 일본에서 군사정부 수립을 꾀했던 미수 사건이었다. 1933년,...

[32년]아라키 사다오,5·15사건에 대해서...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5-15사건,육군대신 아라키 사다오는 자신이 몸담은 내각의 총리의 암살 사건에 대해서 다음 입장을 표명했다.사건 발생 며칠 후, 육군대신 아라키의 성명, “우리는 이들 순수하고,순진한 청년들의 행동에서 표현된 정신을 고려할 때, 눈물을 멈출 수 없다. 그들은 명성과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행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역...

[32년]이누카이,"인사는 삶과 죽음의 문제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김영삼에게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였지만, 일본 제국의 총리 이누카이 쓰요시에게 인사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되었다.1931년 9월 18일의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본 육군이 궐기했다. 도쿄의 총리, 외무장관,육군대신,참모총장은 이시와라 간지의 관동군을 통제할 수 없었다. 관동군은 자신의 길을 걸어갔고, 일...

아라키 사다오의 한마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죽창으로 무장한 일본군 1개 사단만 내게 달라. 그러면, 러시아의 전체 극동군을 격파시킬 것이다."- 아라키 사다오육군 대신을 역임함Sadao Araki, Quoted in "Until They Eat Stones" - Page 254 - by Russell Brines - 1944- 아라키는 일본 정신의 힘으로...

[32년] 5월 15일 암살사건과 마자키 진자부로?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아라키 사다오가 육군대신에 재직 중일 동안인 1931년 말- 1934년 1월 동안은, 청년장교 운동의 전성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라키가 이 운동에 동정적이었음은 물론이고, 육군 참모 부총장 마자키 진자부로 같은 황도파 세력이 일본 육군의 주요 요직을 장악한 상황이었다. (청년장교 운동에 대해서 황도파가 동정적...

[32년] 소련과 일본의 전쟁 위기?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0년대 내내 소련과 일본은 극동에서 간헐적으로 충돌했다. 이 충돌 중에서 소련에게 가장 위험했던 것은 32년 8월의 위기 상황이었던 것 같다.중일전쟁 발발과 더불어, 이누카이 쓰요시 내각에서 소련과의 전쟁을 주장하는 일본 육군 황도파의 대부, 아라키 사다오가 육군대신을 역임할 동안(1931-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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