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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히틀러,"역시 일본놈들은 믿을 것이 못된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독소전쟁과 삼국동맹 그리고 일본?1941년 6월의 독소전쟁의 발발은 불과 얼마전에 소련-일본 중립조약을 체결한 일본에게 충격을 주었다. 심지어 독일은 삼국동맹의 정신에 따라 , 일본이 소련의 배후인 시베리아를 공격해 주기를 원했다. 이에 대해서 일소 중립조약을 성사시킨 장본인 외무장관 마쓰오카는 일본이 소련을 공격...

"1939년 국제정치의 대반전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독일의 리벤트로프와 소련의 스탈린,몰로토프>세계가 큰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1939년에 드디어 소련이 주장하던 파시즘에 반대하는 인민전선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소련과 영국,미국,프랑스가 손을 잡는 대동맹의 결성이 될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이다.우선, 39년 3월에 히틀러가 프라하를 포...

[36년]"반공주의를 위해 소련과 친해야 한다?"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상식적으로 보면, 공산주의를 지지하면, 소련과 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역으로, 반공주의자라면, 소련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것이 지당하다.그런데,역사가 존 가버에 따르면, 1936년 12월의 서안사변에서 장개석 세력이 얻은 교훈은 독특했다. 즉 "반공주의는 친-소련 pro-Sovie 일 ...

[89년]유럽통합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힘겨루기

[90년] 독일 통일에 대한 프랑스의 대응은?몰타 미·소 정상회담(영어: Malta Summit, 러시아어: Мальтийский саммит)은 미국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1989년 12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지중해 몰타에서 가진 정상회담이다.89년 12월이면, 소련은 자신의 안전을 고민해야 할 시기로 ...

케네디와 전략공군 사령관의 대화...

은행을 털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핵무기인가,칼인가?아이젠하워에게 물려받은 (핵무기) 지휘 통제 원칙에 입각하면 휘하 지휘관이 러시아의 실질적 군사 행동에 맞닥뜨릴 경우 독자적 결단으로 열핵(수소 폭탄)을 동원한 괴멸전을 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가능성 때문에 케네디는 뜻하지 않게 핵 충돌이 발생하는 사태를 내다보며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

"베트남 공산화와 미국의 새옹지마?"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미국에게 베트남이라는 악몽은 새옹지마였는가? "미국은 어떻게 베트남을 잃고 냉전에서 승리했나?"1999년 미국의 보수주의 작가 마이클 린드는 "베트남: 필요한 전쟁"에서 독특한? 주장을 했다.미국은 베트남에서 지면서, 소련을 과잉팽창이라는 함정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린든 존슨의 미국이 1965년에 베트남에 개입한...

"조지 캐넌이 미중화해를 반대한 이유는?"

"김정은이 냉전을 끝낼 수 있을까?""우리의 안전은 적국 혹은 세상에서 믿을 수 없는 세력간의 균형을 만들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다."- 조지 캐넌 해군 대학 강연에서- 이것이 바로 세력균형이다.세력균형에 대한 믿음에도 불구하고,조지 캐넌은 헨리 키신저의 미중화해 노력을 반대한 적이 있었다. 키신저의 미중화해는 소련과 중국의 갈등...

"소련은 베트남 전쟁의 평화 중재자였는가?"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미국과의 평화공존이냐, 사회주의 형님국가의 자존심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베트남 전쟁은 소련에게 딜레마였다. 소련은 서양과 평화공존을 추구했지만, 베트남에서 공산주의 진영의 큰 형님 역할도 해야 했다. 만약 소련이 전자를 강조한다면, 베트남과 멀어지고, 반대로 후자라면, 서양과의 긴장이 다시 고조될 것이었다. 1...

[55년]"소련은 친 親-프랑스 세력이었나?"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난 이글루스에서 이른바 "키신저빠"로 분류되지만,기록을 읽어가다가 보면, 키신저가 틀린 것도 가끔 발견하기도 한다.가령, 1959년 키신저가 소련을 혁명세력으로 규정한 것이 그 예에 속한다.  키신저는 1959년 <안정을 위한 모색>이란 글에서, 소련은 자신의 안보에 대한 근심을 해결하기 위할 뿐이며,...

중소분쟁과 대만의 장개석의 대응?

냉전의 역사에서 장개석하면, 한국의 이승만과 더불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반공투사이다. 모택동의 중국과 그를 지원한 소련은 반공주의자 장개석에게 원수라고 할 수 있다. 모택동과의 국공내전에서 소련은 장개석에게 빅엿? 을 날린 바 있었다. 하지만, 60년대를 경과하면서, 중소분쟁이 고조되고, 60년대 말에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화해로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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