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빈체제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1 2 3

18세기 말의 국제평화론과 메테르니히?

20세기에 등장한 국제연맹은 유럽의 전면적 평화를 위한 오랜 꿈의 실현이었다. 그 맹아로 간주할 수 있는 사상이 여럿 존재했다. 메테르니히의 은사였던 니클라스 보그트 Niklas Vogt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마인츠 대학의 역사통계학과 교수였다. 메테르니히는 1790년 10월부터 2년 동안 마인츠에서 공부했다.보그트는 유럽의 영구평화를 ...

1972년의 국제정세와 키신저 그리고 메테르니히?

1972년의 국제정세와 73년 1월 27일의 파리협정을 돌아보면,당시 헨리 키신저는 마치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가 된 기분이었을 것이다.72년 닉슨의 역사적 베이징 방문으로 미중화해가 시작되었고, 모스크바 정상회담으로 미소의 데탕트가 재확인되었다. 그리고 73년 1월 키신저는 마침내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그동안의 냉전의 대립적이며 불안정한...

신성동맹과 영구평화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위키백과에 따르면 1815년 신성동맹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신성 동맹(神聖同盟,독일어: Heilige Allianz)은 1815년 9월 26일, 프랑스 파리 시에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간에 체결된 동맹이다. 영국에도 제안되었지만, 영국은 자신들의 전통 외교 정책을 고수하며 참가를 거부했다.스텔...

키신저, 나폴레옹 전쟁의 교훈은?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나폴레옹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1815년에 빈에서 만난 정치가들은 지난 25년 동안의 끝없는 전쟁을 통해서 이 교훈을 얻었다. 그들은 유럽의 평화가 세력균형에 달려있고, 그 핵심원리는 프랑스가 손쉬운 정복 유혹에 빠지지 않게 만드는데 있었다. 그들은 중부 유럽에 거대한 장애물을 만들려고 했다. 이는 지난 4세대...

메테르니히,"정책은 감정이 아니다!"

키신저의 경고...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나폴레옹의 몰락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자국 군대를 서유럽까지 진출시킨 러시아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는 상황이었다.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는 새로운 선택에 직면하게 되었다. 러시아를 침공하는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메테르니히의 오스트리아는 이른바 "한없이 제한적인 동맹"을 체결한 상황...

키신저, 적과 화해하는 두가지 방법은?

키신저의 경고...키신저는 그의 박사논문, <회복된 세계>에서 안정된 국제질서의 역설을 하나 지적했다. 즉 안정된 국제질서란, 그 소속 국가들, 특히 강대국들이 정통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체제이지만, 그 체제에 대해서 소속국가들이 다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키신저에 따르면, 바로 이같은 일반적 불만이 국제체제 안정의 조...

빈체제와 벨기에 독립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빈체제][벨기에 독립]키신저에 따르면, 1830년의 벨기에 독립은 빈체제의 효율적 작동의 좋은 예이다.1830년의 벨기에 혁명은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했다. 18세기 내내, 유럽의 지배에 나선 군대들은 바로 네덜란드의 이 지역을 통과한 바 있었다.영국의 입장에서, 그 세계전략이 제해권에 있는 가운데, 영...

키신저, 윌슨이냐 메테르니히냐?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키신저][회복된 세계][윌슨][메테르니히][캐슬레이]키신저의 박사학위 논문, 회복된 세계를 보면, 나폴레옹 전쟁,제1차세계대전 같은 전면전 이후의 평화정착 과정의 문제가 논의된다. 두개의 강화가 가능하다. 회고적인 강화와 미래지향적 강화가 바로 그것이다. 키신저가 명시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았지...

키신저, 빈체제에 대해서...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키신저][평화 체제][빈회의][빈체제]"주요 전쟁 없이 가장 오래 지속된 국제체제는 빈회의 이후 등장한 체제였다. 이 체제는 정통성과 균형, 공유된 가치 그리고 세력균형 외교가 결합된 것이었다. 공유된 가치가 각국의 요구 수준을 제한했고, 균형이 다른 나라에 대해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했다.&n...

"메테르니히의 전략?"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오스트리아][메테르니히][빈회의][빈체제]"(나폴레옹 전쟁 말기) 오스트리아의 힘은 나날이 커지고 있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이는 국민들의 열정 때문이 아니라, 국가의 기강 및 집요한 지도력 덕분이었다. 투쟁의 목표는 균형상태를 위한 전쟁 a war for an equilibrum, 민족이 아닌 국가들...
1 2 3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2019 대표이글루_역사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