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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미국 상원,베르사유 조약 비준 거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19년 9월 24일 미국 상원이 전후 국제질서의 근간이 될 베르사유 조약의 비준을 거부했고 11월 19일에 조약을 폐기했다.이로써 전간기 국제질서에는 먹구름이 지배할 것이었다.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미국 상원의 반대파 윌리엄 보라 William Borah 의 반대의 변은 다음과 같았다. 쟁점은 베르사유 조약 때문...

20세기초 영국의 친독일적 전통?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관한 기억 하나"[영국][독일]조너선 해슬럼의 카 평전에 따르면, 역사가 카와 그의 세대는 친독일적 전통 속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카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 "20세기 초반 우리는 독일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찬양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영국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다른 곳으로부터 지원이...

카,"파리강화회의에서 영국외교의 입장은?"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관한 기억 하나"[파리강화회의]카, 파리강화회의의 노선은?카는 파리강화회의가 여러 차원에서 진행되었다고 훗날 회고했다. 우선의 국가의 이해와 낡은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수구적 단계였다. 이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추구하던 노선이었다.그 다음 단계는 다음과 같았다."이 단계는 자결에 대한 신념을 추구하는 정책 ...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케인스의 독설...

케인스와 제1차세계대전"유럽의 미래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고, 유럽의 생존수단은 그들의 걱정 밖이었다. 옳든 그르든 그들이 집착한 것은 국경과 국민 감정, 세력 균형, 제국적 팽창, 강하고 위험한 적국 하나를 영원히 불구로 만드는 일, 복수, 승전국들의 어마어마한 재정적 짐을 패전국에게 전가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케인스평화의 경제적 귀결 중에...

케인스, 파리 평화회의 분위기에 대해서

케인스와 제1차세계대전"이곳은 육체적,정신적,지적 허세가 넘쳐 나는 끔찍한 혼돈의 장소입니다... 대통령은 그냥 평범한 비국교도 같았고, 불량배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여 있어요. 미국인들은 이상주의와는 아예 거리가 멀었지만, 그 대신 프랑스인들에 대해 강렬한 증오심을 품고 있지요. 영국과 미국은 사실상 크고 작은 경우에서 프랑스에 반대하는 전선을 구축했습니...

해럴드 니콜슨,파리 평화회의에 대해서

[베르사유 조약] "우리는 신질서가 확립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파리에 왔다. 하지만, 우리는 신질서가 구질서를 망쳐버렸을 뿐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곳을 떠났다."-해럴드 니콜슨 Harold Nicolson영국 외무부 2등 서기관 신분으로 파리 평화회의에 참석했다.

"베르사유 조약은?"

[자료] 베르사유조약과 독일영토 분할..."화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징벌적이었고, 독일의 부활을 막기에는 지나치게 관대했다.""Too punitive for conciliation, too lenient to keep Germany from recovering"-키신저, <외교>, 239페이지...

"방위조약과 국회의 선전포고 동의권이 충돌하는 경우?"

파리 평화회의의 협상 과정에서, 프랑스는 독일에 대한 안전보장을 위해서 국제 상비군의 창설을 주장했다.이는 미국의 반대를 받았다. 미국이 상비군 및 프랑스의 안보에 대한 보장을 담는 조약을 약속할 수 없는 이유는 미국 헌법에 따라, 선전포고 권한이 의회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즉 만약 상비군 혹은 프랑스의 안보를 보장하는 조약을 미국이 체결할 경우...

"전후 프랑스의 몰락!"

[베르사유 조약][베르사유 체제]프랑스는 비록 공식적으로는 승전국이었지만, 매우 비참한 입장에 처해있었다. 루이14세 시대 이래 프랑스는 대륙의 패권을 노린 국가였지만, 대전 이후, 패배한 적으로부터 자신의 국경을 지키는 일도 자신할 수 없는 국가로 전락했다. 1880년, 프랑스는 유럽인구의 15.7%를 차지했다. 1900년, 그 수치는 9.7%로 하락...

"베르사유 조약은 카르타고식 평화였는가?"

[자료] 베르사유조약과 독일영토 분할...[베르사유 조약]"베르사유 조약은 카르타고식 평화였는가?"카르타고식 평화 Carthaginian peace 가 상대방을 철저하게 괴멸시켜 더이상 분쟁의 원인을 없애버리는 것이라 한다면, 베르사유 조약은 카르타고식 평화는 거리가 멀었다. 베르사유가 독일을 "가루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라리 베르사유 조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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