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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일본과 전쟁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인식차?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1942년의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영국과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에 대한 인식차를 나타냈다.영국에서 1943년초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이 먼저 패망할 경우,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끝까지 싸워야만 하냐는 질문에 대해서 단지 6%의 응답자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1942년말의 워...

"주사파라면 이해할 수 없는 책은?"

남한 주사파는 미국을 악마로 간주하는 경향을 가진다.하지만 2018년 스티븐 월트의 신간 제목에는 미국 외교정책이 선한 의도를 가진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워싱턴 엘리트의 이상주의가 세계질서를 혼란케 만든다는 것이다. 반미 주사파는 제목 자체부터 당황스러울 것이다.미국이 선한 제국이다? ㅠㅠ

미국의 태평양전쟁 딜레마와 영국의 제국주의?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미국에게 일본과의 싸움은 전체주의와의 투쟁 뿐만 아니라, 극동에서의 유럽 제국주의와의 갈등이기도 했다. 미국의 여론 중에서, 고립주의,반-영국 성향의 주장에 따르면, 미일전쟁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유럽 제국주의가 될 수 있었다. 가령, 미국 상원의원 휠러는 "만약 미국이 일본과 싸우면, 이는 단지 아시아의 영연...

루스벨트, 미국주의란 무엇인가?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이 나라가 세워진 원칙과 이후 항상 유지된 원칙은 미국주의가 정신의 문제라는 것이다.미국주의는 인종 혹은 조상의 문제가 된 적도 없고, 결코 될 수 없다."-프랭클린 루스벨트- 이 원칙에 따르면, 일본계 미국인의 징병은 당연하다.하지만, 진주만 이후 일본계 미국인의 수용소 감금을 결정한 것도 바로 그였다. ...

필리핀계 미군 병사의 동원과 전후 보상?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일본에 항복한 미군과 필리핀계 병사들>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군으로 동원되었던 조선계 퇴역 군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무시가 문제시 되어왔다.비교를 위해서 그 전쟁에서 미군을 위해 동원된 필리핀계 군인에 대한 미국의 대우와 보상에 대해 알아보자.다카시 후지타니에 따르면, 약 20만 명의 필리핀인들이 미군에...

[42년]방첩대,"쪽바리들이 깜둥이들을 선동한다!"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41년 12월의 진주만 기습 이후 미국내 반일 정서가 증폭되면서, 일본이 미국내 흑인 문제를 선동하여, 국내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공포가 대두되었다.1942년 4월에 방첩대는 이 문제에 대해 고찰한 〈미국 니그로 사회에 침투한 일본인의 인종 선동 Japanese Racial Agitation among Americ...

[44년] 흑인 부대를 지휘하는 백인을 위한 교본?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전쟁은 인종주의에 대한 해독제인가?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에서 흑인 병사 교육을 위한 1944년 미국의 육군 훈련 교범은 다음을 주장했다."훌륭한 병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U.S. War department, Command of Negro troops, War Department Pamphlet, 1...

"미국 흑인과 일본 제국에 대한 환상?"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검색을 통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일본 인식에 대한 연구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Marc S. Gallicchio, The African American Encounter with Japan and China: Black Internationalism in Asia, 1895-1945, UNC Press ...

[40년]리처드슨, 함대의 하와이 배치에 반대한 이유?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미국 해군의 리처드슨은 진주만 기습의 비극을 예견했다는 이유로 좌천당한 것인가? 제임스 리처드슨 James Otto Richardson (18 September 1878 – 2 May 1974) 은 미국 해군 제독으로, 1941년 2월까지 미국 함대 총사령관이었다. Commander in Chief, Un...

"육군 황도파와 해군 함대파의 관계?"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군의 군국주의화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아라키 사다오의 육군 황도파와 가토 간지의 해군 함대파의 궁합이 맞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육군과 해군의 각 파벌은 1930년대 초에 부상했다. 두 파는 이른바 "1936년 위기설"을 주장했다. 런던 해군 조약이 재협상되는 35년-36년에 일본에 대외적인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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