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만주사변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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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서비스의 스탈린 전기의 한계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국내 번역된 스탈린 평전 중에서그나마 읽을 만 한 책이 바로 로버트 서비스의 그것이다.하지만, 이 책의 근원적인 한계는,스탈린과 1931년 만주사변 이후의 극동에서의 일본의 도발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이 가지는 중요성에 비한다면, 지나치게 간략하다.)스탈린은 1936년 3월, 아...

[35년]몰로토프,일본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3년 5월의 탕구협정 이후 ,만주사변이 공식 종료되면서, 중국에서 왕징웨이의 주도하의 남경 정부는 일본에 대한 우호정책을 실시했다. 중국의 친일정책의 결과, 1935년 초가 되면, 중일 화해를 넘어선, 중일동맹의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소련은 긴장하게 되었다. 극동에서의 중일동맹의 결성은, 일본의 소련 침략 위...

[32년] 소련과 일본의 전쟁 위기?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0년대 내내 소련과 일본은 극동에서 간헐적으로 충돌했다. 이 충돌 중에서 소련에게 가장 위험했던 것은 32년 8월의 위기 상황이었던 것 같다.중일전쟁 발발과 더불어, 이누카이 쓰요시 내각에서 소련과의 전쟁을 주장하는 일본 육군 황도파의 대부, 아라키 사다오가 육군대신을 역임할 동안(1931-1934)...

[31년]만주사변과 미국,영국,소련의 대응?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승리에 환호하는 일본군 -1931년>  -지금은 웃고있지만..ㅠㅠ만주에서의 일본 관동군의 도발에 대해서 왜 열강은 무기력하게 대처한 것인가? 1931년 만주에서의 일본 관동군의 도발에 대해서, 만주의 군벌 장학량은 화북에 병력을 모으로, 만주의 변경을 게릴라식으로 공격하는 저항을 했다...

"만주 일본군의 월권과 이토 히로부미"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에서, 만주문제는 만주사변,만주국,국제연맹 탈퇴,영국 및 미국과의 갈등,일본의 국제적 고립,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으로 귀결되면서, 일본패망의 불씨가 된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는 만주에서의 일본군의 월권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문제는 일본의 만주침략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초대 조선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영...

"장개석의 중일전쟁 구상은?"

역사가 레이 황의 지적에 따르면, 장제스(장개석)는 다음과 같은 전쟁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중일전쟁의 국제화전략으로, 즉, 다가올 일본과의 전쟁에서, 전쟁을 지구전,장기전으로 몰아가서, 열강의 개입으로 전쟁을 국제화시켜서, 일본을 패망시키자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1934년 7월, 장제스는 루산 캠프에서 <외세의 침략에 대한...

장개석,<친구인가,적인가?> 1934년

역사가 레이 황에 따르면, 논문<친구인가? 적인가?>는 장제스(장개석)이 구술한 것을 천부레이가 받아적은 것이다. 그것은 쉬다오린 이라는 필명으로 <외교평론> 1934년 가을호에 게재되었다고 한다.이 글은 일본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중국 정부가 얼마나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국제적인 ...

마쓰오카 요스케와의 대담 -1933년 4월

제2차세계대전 개전과 일본마쓰오카 요스케와의 인터뷰 1933년 4월다음은 미국 주간지 타임의 <일본 : 어설픈 선전국가 JAPAN: Poor Propagandist> , 1933년 4월 3일 월요일 호의 기사 중 관련 내용을 번역정리한 것이다.1933년 2월 24일, 일본 대표단의 국제연맹 회의장 퇴장이 국제연맹 탈퇴의 신호탄이었다는 것은 주...

고노에,"세계의 현상을 개조하라",1933년

고노에 후미마로1933년 2월, <세계의 현상을 개조하라>전쟁의 원인은 영토와 자원의 불공평한 분배이며, 지금의 불합리한 국제현상을 조절하지 않으면 진정한 평화를 달성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경제교통의 자유', 즉 관세장벽의 철폐와 자원개방, 그리고 이민의 자유라는 2대 원칙을 인정해야만 하는데, 이들 조건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와 히로히토의 고민은?

1933년, 만주문제를 둘러싼 일본과 국제연맹의 갈등과 이로 인한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는이후 일본의 외교적 고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당시 일본의 우치다 외무장관이 국제연맹을 탈퇴할 시기가 임박했음을 천황에게 알리자,히토히토는 다음만을 물었다고 한다."옛 독일령 미크로네시아에 대한 일본의 신탁통치권에 어떤 영향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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