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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인과 일본 제국에 대한 환상?"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검색을 통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일본 인식에 대한 연구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Marc S. Gallicchio, The African American Encounter with Japan and China: Black Internationalism in Asia, 1895-1945, UNC Press ...

쇼와 해군에 대한 도고 헤이하치로의 분탕질?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좋은"? 메이지 시대의 영웅 도고는 쇼와 시대에 어떤 행동을 했는가? <언덕위의 구름>의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이란,  ‘활력 넘치고 건강한’ 메이지 시대(1868~1911)에 대한 향수를  쇼와 시대(1926~1989)가 되면서 메이지 시대의 ‘건강했던’ 일본 민족주의가 군부...

알프레드 마한, 러일전쟁에서의 러시아 해군...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러일전쟁에 대해서 알프레드 마한은,러시아 해군의 치명적 오류는 함대를 분산시킨 것이라 했다.러시아 전함의 힘은 태평양 함대(여순 항,블라디보스톡 항), 흑해 함대, 발틱 함대로 분산되어, 일본 해군에 맞서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마한의 교리대로, 함대를 결집하여 싸워 승리한 것은 도고 헤이하치...

1893년,하와이에서 미국과 일본의 충돌?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41년 진주만 기습의 전조는 1893년에 발생했다. 1893년 1월에 하와이 혁명이 발생하자, 알프레드 마한은 "하와이와 우리 해양력의 미래"라는 논문을 발표, 병합을 주장했다. 1월 16-17일 호놀롤루 거주의 소수 미국인 교민들이 미국 군함 보스턴호의 수병과 해병과 미국 공사인 존 스티븐스의 도움을...

러일전쟁 이후 일본 육군의 2류화?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결국, 군축을 통한 군 근대화 이후에도 일본 육군의 장비는 과거의러일전쟁 당시에 비해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무기체계 면에서 세계열강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채 이른바 ‘2등 육군’으로 추락하고 만다. 대표적으로, 보병의 기본 화기는 러일전쟁 당시와 동일한 총검을 장착한 38...

와타나베,육군의 "정신만능"을 비판한 군인의 끝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제1차 세계대전을 유럽 현지에서 목격한 일부 일본 육군 무관들은 일본의 개혁을 주장했다. 1917년 네덜란드 주재 무관이었던 와다나베 조타로도 그 중 한 명이었다.와타나베 죠타로(渡辺錠太郎)는 “현 전투방법은 지나친 공격정신의 오용에 따라 무모한 돌격의 정신만능주의에서 오는 육탄전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러일전쟁 이후 일본 육군과 해군의 선택?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야마다 아키라에 따르면,러일전쟁 승리 이후, 일본군의 선택은육군은 보병중심,백병주의 그리고 해군은 대함거포, 함대결전주의였다고 한다.시바 료타로의 사관이 옳은 것인가? 메이지 시대의 영광은 러일전쟁의 종전가 더불어 끝장난 것인가?물론 이후 새로운 세대의 전략가들이 등장했다. 육군은 나가타 데쓰잔과 이시와라 간지 그...

일본 육군과 독일의 화력주의?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 육군의 전력의 핵심은 '화력'인지 아니면 '백병돌격'인지의 문제는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러일전쟁 이전 일본 육군은 독일식 화력주의를 군사사상으로 채택하고 있었다. 구(舊) 무사계급 출신인 일본 육군의 직업군인들도 세이난(西南}전쟁, 청일전쟁을 통해 보병의 소총 화력과 포병의 지원 사격이 총검과 칼을 ...

러일전쟁과 진주만 그리고 야마모토 이소로쿠?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태평양전쟁에서 일본 육군이 러일전쟁의 구습을 반복했다면, 일본 해군은 진주만 기습이라는 항공기 중심의 해전의 혁신을 성취한 것인가?러일전쟁의 쓰시마 해전과 태평양전쟁의 진주만을 비교하면, 해상전의 본질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전자가 전함 위주였다면, 후자의 주역은 항공기였다. 이 후자의 혁신을 주도한 것은 야마모토 ...

[러일전쟁] 노기 마레스케의 비극?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노기 마레스케가 지휘한,보병이 수없이 돌격해서 시체가 산을 이루었던 뤼순요새 공략전의 비참함은 ‘갖지 못한' 국가가 무리하게 전쟁을하게 된 데서 유래한다. 필연적인 비극이었다. 노기가 어리석은 장군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신속한 적지 공략 명령을 받았는데, 필요한 포탄이 충분하지 않다면 어떤 장군이라도 병사를 돌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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