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니콜라이2세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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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과 짜르 알렉산드르 3세?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만약 러시아 짜르 알렉산드르 3세가 1894년 11월에 급사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세르게이 비테는 주저없이, "알렉산드르 3세가 살아서 짜르 자리를 지켰다면, 일본과의 전쟁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고 확신했다. <러시아 혁명사>에서 맑스주의자 레온 트로츠키도, ...

1903년 8월 고종이 니콜라이에게 보낸 밀서는?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1903년 8월, 러일 양국이 갈등 해소를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교섭 내용이 조선 측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8월 15일에 고종은 러시아 짜르 니콜라이2세에게 다음의 밀서를 보냈다.8월 15일고종, 러시아 황제에게 밀서,“행여라도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우리나라는 전쟁터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을 우려한...

러일전쟁 직전,니콜라이가 장담한 것?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일본과의 협상 결렬이 있기 전 하루 전날, 짜르는 한 측근에게, “짐에게 맡겨라. 일본은 싸우지 않을 것이다. 짐의 치세는 시종 평화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 말했다. -강성학,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251.그리고 얼마 뒤, 러일전쟁이 시작되었다.

1896년,쿠로파트킨, 니콜라이의 야망?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쿠로파트킨,1896년, “나는 우리의 황제가 자기 머리 속에 러시아를 위해 만주를 장악하고 조선을 병합하는 웅장한 계획들을 갖고 있다고 비테에게 말했다. 황제는 또한 티벳을 자기의 지배 하에 두려는 꿈을 꾸고 있으며 페르시아를 취하고 보스포러스 해협 뿐만 아니라 다다넬스 해협까지 장악하기를 열망한다....

니콜라이2세 외무부의 근무기강은?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러시아 외무부의 하급 관료였던 드미트리에 따르면, 니콜라이 2세 시대의 외무부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외무부의 무사안일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든 직원들이 졸았다." 주러 독일 대사는 "내 평생 동안 이곳 외무부 만큼 매우 게으른 자들을 본 적이 없다. 모든 관리들이 오전 11시 혹은 12시...

1903년,일본 군사력에 대한 짜르의 무시?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1903년 12월, 러일 전쟁의 위기가 고조하자,독일 카이저가 러시아 짜르에게 전쟁 위험을 경고했지만, 니콜라이 2세는 이를 무시했다.일본육군의 우수성을 바르게 판단한 육군상 쿠로패트킨의 보고는 이미 통하지 않았다. 일본의 군사력을 터무니없이 과소평가해 황제의 호전성을 자극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1812년의 전략을 구사했다면?"

[1894년] 영국의 더 타임스의 한마디...러일전쟁에서 일본 승리는 필연적이었는가?전쟁 발발 당시, 러시아 육군장관이자 만주의 러시아 육군 총사령관 쿠로파트킨은 소모적 장기전 전략을 주장했다.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대를 맞서 사용한 1812년의 전략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쟁 자원을 절약하고, 결전을 피하면서, 그는 힘을 비축하려 했고, 필요하다면...

"짜르 니콜라이2세의 딸들 문제..."

[러시아혁명]"짜르의 딸들은 학살되지 않았다!"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비극적인 최후와 관련해서,짜르의 딸은 학살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한, 마르크 페로의 주장을 보고,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훌륭한 입장을 가진 역사가라고 하더라도특정 문제에 대해서는 "헛발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짜르의 딸들의 생존에 대한 각종 역사적인 정황 증거들을 제시하...

[러시아혁명]"짜르의 딸들은 학살되지 않았다!"

[러시아 혁명][로마노프 왕조의 최후][짜르 니콜라이2세]정설에 따르면 러시아의 마지막 짜르 니콜라이2세와 그의 가족은 1918년 7월 16일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볼셰비키에 의해서 잔인하게 처형되었다고 한다.하지만, 프랑스의 역사 월간지 <역사> 최근호에 "짜르의 딸들은 학살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프랑스 역사가 마르크 페로와의 대담...

니콜라이2세의 통치방법?

니콜라이2세는 러시아제국의 마지막 짜르였다. 그는 영리하지 못했고, 아둔했으며, 변화를 의심했고, 완고했으며, 사람의 뒤통수치기를 즐긴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다음은 러시아 총리 (1905년 11월 6일 - 1906년 5월 5일)를 역임한 세르게이 비테의 관련 증언이다."우리(짜르와 비테)는 2시간 내내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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