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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휴가지원 사업과 기쁨의 힘?"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근로자 휴가지원사업을 추진 중이라 한다.'근로자 휴가지원사업'은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휴가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으로 분담비율은 근로자가 50%, 기업이 25%, 정부가 25%다. 근로자가 20만 원을 적립하면, 기업과 정부가 각각 10만 원씩 휴가비를 지원한다. 근로자는 총 40만 원의 적립금(40만 원)을 모으는 것. 적립금...

"네빌 체임벌린과 일본 제국의 부상?"

"극동에서 본 체임벌린의 유화정책?"<네빌 체임벌린과 아돌프 히틀러>일반적으로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대해서 유럽적인 시각에서 당시의 영국정책이 히틀러의 침략성을 오인한 데서 비롯된 참사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하지만, 당시의 영국은 제국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홍콩,싱가폴,말라야 등을 중심으로 한 극동에 영토를 가진 제국이 바...

네빌 체임벌린의 여동생의 한마디...

전쟁에 대한 체임벌린의 인식 변화...(조카에게)"네 아버지는 실패자이며, 어느 정도 내쫓김을 당해 마땅하지만, 그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이 아직도 건재하며, 그리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해 승리한 것처럼,너의 아버지도 그러했다."- 체임벌린의 여동생 힐다가 체임벌린의 딸 도로시 로이드에게 한 말1941년 12월 21일C...

[50년]베트남 주둔 프랑스군 내부의 모로코 병사들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사진- 독일제 수송기 Junkers JU 52 에 탑승 중인 모로코 병사들- 프랑스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50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인도차이나 주둔 프랑스군은 대략 25만 명이었다. 이들 중 40%는 프랑스 정규군이었다. (프랑스 본토, 외인부대, 식민지 부대)(외인...

[50년]카오방 전투, 프랑스측 부상병의 비명?

[1900년] 미국에게 필리핀은?유튜브를 통해, 프랑스 방송이 방영한 50년 베트남에서의 카오방 전투 관련 다큐를 보다가프랑스 부상 병사들의 신음 소리와 관련된 해설을 들었다.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50년의 카오방 전투가 충격적인 것은 프랑스의 정예 엘리트 부대인 외인부대가 베트민 군대에게 괴멸당했다는 것이었다.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

도널드 트럼프, 헨리 키신저와 회동...

트럼프,"테러범을 고문하지 않겠다!"보도에 따르면, 5월 10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가 헨리 키신저와 만났다. 트럼프는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을 경질하면서, 워터게이트 시절 닉슨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닉슨의 국가안보보좌관이자 국무장관인 키신저를 만났다.두 사람은 시리아 문제를 논의했고, 이곳 상황이 긍정적임에...

1940년 처칠, 루스벨트에게 눈물어린 호소를 하다.

키신저의 경고...1939년 11월 미국에서 전시 중립법이 통과되면서, 미국의 교전국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가 해제되었다. 단, 수출 조건은 현금 판매였다. 즉 현금판매법은 돈을 주면 우방에게 전쟁물자를 팔아도 된다는 법이었다.현금판매법 덕분에, 영국은 당장 필요한 전시물자를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은 곧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영...

1940년 조셉 케네디와 처칠의 갈등

키신저의 경고...<조셉 케네디와 윈스턴 처칠>1940년 중반 유럽에서 영국은 나치 독일과 사실상 홀로 싸우고 있었다.프랑스는 망했고, 이탈리아는 히틀러 편이었고, 폴란드 등 거대한 유럽이 독일 치하에 있었고, 스페인도 히틀러 편이었다. 처칠의 표현처럼, "우리가 바칠 것은 피와 눈물과 땀방울" 뿐이었다. 영국은 미국의 원조...

1939년의 미국여론, 공산주의냐 파시즘이냐?

키신저의 경고...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유럽이 전쟁에 휘말린 상황에서미국 여론은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치 독일보다는 스탈린의 소련을 더 혐오했다는 것이다. 소련과의 협력이 어려웠던 이유였다. 1939년 말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미국 여론조사 : 공산주의냐 파시즘이냐?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1935년 나치 독일 부상에 대한 스탈린의 인식은?

키신저의 경고...1935년 유럽에서 독일과 이탈리아가 위협적으로 부상했을때, 이에 대한 스탈린의 인식은 어떤 것이었는가?1935년 7-8월의 코민테른 제7차 대회는 이 문제를 토론했다. 코민테른은 파시즘은 민주 民主를 탈취하고 그동안 인류가 쟁취해 낸 위대한 사회적 권리 및 개념적 성과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위원장 드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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