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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잇키와 조선인...

대만과 일본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기타 잇키>유명한 우익 이론가인 기타 잇키는 1923년에 출간된 그의 《일본개조법안대강>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이 별개의 인종을 이루지 않았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주장했다. 일본 민족에는 조선인 혈통이 크게 섞여 있을 뿐 아니라 "나라와 해이안 시대의 귀족들”은 "순수 조선인 혈통”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

"만약 2월 26일 사건이 성공했다면?"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육군 수뇌부에서 황도파가 제거된 것은 일본의 대륙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1936년 2월 26일 사건이 성공했다면, 37년의 중일전쟁은 없었을 것이란 주장이 존재한다. 사건을 주도한 황도파는 러시아와의 전쟁에 몰두했다. 따라서 쇼와유신에 성공한 황도파는 러시아와의 대결을 위해서, 중국과의 전쟁을 피하려...

[파시즘] 기타 잇키,황도파 그리고 통제파.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0년대 일본 급진우파 운동에서 국가 사회주의(나치는 아니라 해도)를 주장한 자가 기타 잇키였다. 기타 잇키는 젊은 시절에 맑스주의 사회주의자였고, 이는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경로와 유사했다. 기타와 그를 추종하는 민족주의 혁명가들은 자본주의에 반대했다. 그들은 주요 산업의 국유화와 이익 공유 그리고 개인 소유 ...

세지마 류조, 30년대초 육군은 왜 분노했는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세지마 류조는 일본 육군 장교로 한국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박정희의 존경을 받았고,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정치 자문을 했고, 삼성 이병철의 절친이었다. 세지마 류조는 1932년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당시는 일본 육군의 청년장교 운동이 가장 과격했을 때였다. 세지마가 만약 잘못된 선택을 ...

"기타 잇키에게 생활비를 준 것은 누구인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혁명가에게 윤리란 무엇인가? 혁명에는 윤리도 타도 대상인가? 자신이 타도해야 할 적으로부터 돈을 수수하는 행위의 도덕성은 혁명가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가?쇼와 유신의 사상을 만든 급진 사상가 기타 잇키의 주요 주장들 중 하나는 재벌 타도였다. 타도라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기타 잇키에게 자금을 지원한 것은 또...

기시 노부스케, "기타 잇키에 대해서"

[일본 군국주의]"쇼와 유신과 공산주의?"기타 잇키의 저작은 전쟁 일본에서 청년장교와 대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후에 일본 총리가 되는 기시 노부스케는 동경 제대 재학 시절 동안, 검열을 받지 않은 원본으로 기타 잇키의 저작을 공부했다고 회고했다. 그에 따르면, "수도사가 성경을 공부하듯이, 민족주의 열정에 몰입되었고" , 그는 기타의 주장이 철...

[일본 군국주의] 2·26 사건과 히로히토의 분노?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1936년 2월 26일의 이른 아침, 일본 육군 1사단 병력 1400명이 도쿄의 주요 목표물을 동시다발로 공격했다. 여기에는 고위 정부관리, 육군성 그리고 도쿄 경시청이 포함되었다. 6명의 주요 테러대상 고위 정치인들 중에서 내대신(内大臣) 사이토 마코토(斎藤実), 대장대신(大蔵大臣) 다카하시 고레키요(高...

[일본 군국주의]기타 잇키, "좌파인가, 우파인가?"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일본의 급진 사상가 기타 잇키와 그의 추종세력인 청년장교들은 스스로를 좌파 혹은 우파로 간주하지 않았다.1923년의 저술에서 기타는 "이 책의 저자는 행동하는 인간이며, 혁명의 제국 건설을 위해 일한다. 따라서 저자가 좌파냐, 우파냐는 질문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류의 질문은 시대착오적이다."라 적었다.1932년 이...

기타 잇키와 한국?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한국 문제와 관련, 기타 잇키는 다음을 주장했다고 한다."조선인들은 10년 안에 투표권을 가지게 되고, 20년 안에 독립 시킨다."출처-Hugh Byas. Government by Assassination. New York: Alfred A. Knopf, 1942. 87.

[36년] 쇼와유신과 청년장교 운동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2-26 사건, 1936년"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Shōwa Restoration쇼와유신은 매우 모호하게 정의된 정치 구호였다. 쇼와유신은 1936년 2-26 사건에서 청년장교운동의 반란의 구호였다. 유신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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