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와 이오니아?" Le monde

"스파르타와 이오니아?"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페르시아 전쟁 말에 그리스 동부(이오니아) 사람들은 스파르타에 대한 반감을 가졌다. (이 반감을 투키디데스는 기록하지 않았다.)

기원전 479년 미칼레 전투 battle of Mykale 이후 펠로폰네소스 당국(스파르타)은 소아시아 (오늘의 터키 서부 해안)의 이오니아 그리스인들을 철수시키자고 제안했다. 그들을 페르시아로부터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 였다. 스파르타는 이오니아인들을 그리스의 다른 곳, 페르시아 전쟁 동안 적국 페르시아 편에 가담한 그리스인들로부터 빼앗은 땅에 이주시키자는 제안이었다. 아테네가 이 제안을 거부했다. 1)

1)  Anton Powell,Athens and Sparta, 9.

펠로폰네소스 전쟁 끝자락인 412년, 페르시아와 동맹을 스파르타가 양보한 것은 바로 이오니아였다. 

이오니아에 대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인식차가 존재했다.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들 중 하나은 기원전 490년대의 이오니아의 반란에 대한 아테네의 개입이었다. 아테네에게 이오니아 방어는 전쟁의 명분이었다.

반면, 스파르타는 이오니아에 대해서는, 마치 20세기 네빌 체임벌린이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해 가진 것과 같은 유화정책과 비슷한 정책을 가진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이오니아 해방에 대한 스파르타의 열의없는 태도가 이오니아의 반감을 샀고, 이것이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 동맹 탄생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테네,스파르타,이오니아,페르시아의 4개 주체의 관점에서 기원전 5세기 에게해 일대의 역사를 국제적인 시각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덧글

  • 함부르거 2022/09/27 17:42 # 답글

    스파르타는 주로 도리아인 계통의 도시였으니 이오니아인들에 대해서는 민족적 동질감을 못 느껴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아테네처럼 해상교역로를 유지하지도 않았으니 더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 파리13구 2022/09/27 17:46 #

    스파르타는 이오니아를 위해 싸울 의지가 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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