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빌 체임벌린과 케네디? Le monde

네빌 체임벌린과 케네디?

1938년 9월 28일

주데텐란트 위기로 인한 전쟁 위기가 최고조에 도달했다. 런던의 주요 건물은 모래주머니의 보호를 받고, 시민들에게 방독면이 배급되었다.

같은 날, 하원에서 네빌 체임벌린은 위기에 대한 영국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연설을 했다.

이날 하원에는 외교대표단 좌석에 얀 마사리크 체코슬로바키아 대사가 있었고, 몇 좌석 옆에 디르크센 독일 대사가 착석했다. 프랑스와 소련 대사도 하원에 왔다. 미국대사 조셉 케네디는 21세의 아들과 같이 왔다. 존 F. 케네디  John F. Kennedy.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케네디의 졸업논문 주제가 되었다.   케네디는 1940년 하버드대학교를 졸업, 학사학위 논문으로〈영국은 왜 잠자고 있었는가 Why England Slept〉(1940)를 제출했고, 다음을 주장한 바 있다.

민의에 입각한 통치란, 외교정책을 효율적으로 수립하는데 선뜻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는 조국이 존망의 위기에 처해있다는 공포감이 확고히 자리 잡아야만, 대의명분을 위해 사리사욕을 버리라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1930년대 영국에서, 거의 모든 집단이 재무장을 원하고 있었지만, 어느 집단도 이를 위해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1938년 뮌헨협정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케네디는 자신의 학사논문을 미국인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간주했다. 즉 미국은 영국의 잘못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케네디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 방식이야말로 최선이라는 논리야 말로 위험하다. 정확히 무슨 이유로 민주주의가 더 우월하다는 것인가?
민주주의 체제가 우월한 까닭은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완전한 계발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민주주의가 우리 입맛에 더 맞는 통치 체제라는 것만을 시사할 뿐,
당면한 세계 문제를 대처하기에 가장 좋은 통치체제는 아니라는 점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즉 그 안에서 살아가기에는 좋은 통치 체제일 수 있지만, 그 약점들 또한 대단하다.

우리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보존하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상황을 지금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보아야 한다.

- 이 논문에서 케네디는 영국이 1930년대에 스스로 재무장할 기회를 놓침으로써 뮌헨에서 유화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는 점을 밝힌다. 하지만, 영국이 이같은 패착에 몰리게 된 책임을 볼드윈, 체임벌린 등 두 총리의 지도력이 취약했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재무장 문제에, 민주주의는 파시즘에 비해 불리한, 체제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지적이었다.

- 하지만 최근의 유화정책 연구성과에 따르면, 1930년대 영국정부는 히틀러의 부상에 맞서 나름의 재무장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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