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프라하 점령과 폴란드의 대응? Le monde

39년 프라하 점령과 폴란드의 대응?

1939년 3월 히틀러가 뮌헨의 약속을 어기고 프라하를 점령했다.

프라하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루마니아 대사가 런던에게 독일이 루마니아 유전을 노리고, 침략을 노리고 있다고 알렸다. 1) 

체코슬로바키아를 집어삼킨 독일이 루마니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히틀러 팽창의 다음 목표는 폴란드의 단치히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이러한 독일의 위협에 대해서 폴란드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특히 프랑스는 폴란드가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예상했을까?

프라하 충격 이후 프랑스 외교는 급해졌다. 폴란드를 믿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냉소적이고,생각이 틀려먹은" 폴란드 외상 베크가 루마니아 친구를 배신하고, 히틀러의 관심에서 폴란드를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고 의심했다.

3월 18일 파리에서 영국 외무부로 도착한 전문은 그 날 아침에 있었던 영국대사와 프랑수 외무부 사무총장 레제의 대화가 기록되었다. 레제는 폴란드 외무부에 대해 경고했다. 베크가 곧 런던을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폴란드 외상은 런던에 안전보장과 동맹을 요구할 것이며, 만약 이것이 거부될 경우, 베크는 귀국하여 본국에 독일과의 타협을 주장할 것이라 예상이었다. 레제와 베크는 '원수지간'이었고, 레제는 폴란드가 루마니아 지원에 대해 관심이 없음을 놓고 파리의 폴란드 대사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폴란드에 대한 레제의 의심은 근거가 있었고, 베크의 사고에 대한 레제의 예상은 바르샤바의 프랑스 대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 결과, 폴란드의 안전보장에 대해서 영국은 속도를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폴란드가 나치의 부상에 대해 편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를 자신의 독일 균형외교의 일원으로 잔류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1) Bouverie, Appeasement- Chamberlain, Hitler, Churchill, 360. 

참고- Christopher Thorne, The Approach of War, 1938-1939 , 115.

3월 31일에 체임벌린이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대한 안전을 보장한 것은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의 독일 편승 위협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덧글

  • 함부르거 2022/06/29 14:48 # 답글

    폴란드를 독일로부터 떼낼 생각을 하기 이전에 체코부터 지켜 줬어야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란 말이 딱 맞는 상횡입니다.
  • 파리13구 2022/06/29 14:55 #

    흐흑...ㅠ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