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프랑스 군사정책의 딜레마? Le monde

1935년 프랑스 군사정책의 딜레마?

1935년 3월, 히틀러가 징병제의 도입과 독일 공군의 재건을 선언했다. 이는 베르사유 조약의 위반이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영국과 더불어 스트레자 전선을 구축했고, 5월에 프랑스-소련 상호원조 조약을 맺으면서, 독일을 유럽에서 외교적으로 포위하는 구도를 만들려고 했다. 

독일 포위 동맹 구성에 대해 폴란드가 반발했다. 프랑스-소련 조약이 폴란드의 전통적 반-소련주의를 자극했다. 프랑스-소련 접근에 대한 폴란드의 대응은 독일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가령 폴란드는 1934년의 독일-폴란드 협정을 통해서 폴란드를 러시아에 맞서는 독일 주도의 진영에 편입시키려 한 바 있었다. 

프랑스군 지도부는 소련과의 동맹을 반대는 근거로,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소련 원조를 무위로 돌리게 만들고, 독일의 서진을 재촉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후의 프랑스와 폴란드의 무기 협상에서 폴란드가 독일 무기를 구입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이에 대해서 프랑스의 블룸 정부는 가믈랭을 바르샤바로 파견, 폴란드 정부를 달랬고, 프랑스의 무기 판매 협정을 1936년 9월에 성사시킬 수 있었다.

- Robert Boyce, Esmonde M. Robertson (eds.), Paths to War, 148.

키신저는 다음을 주장했다.

따라서 전간기 동유럽 집단안보의 딜레마는 다음과 같았다. 소련 없이, 집단안보는 군사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면, 소련과 더불어, 그것은 정치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렇게 히틀러의 독일의 부상을 서쪽과 동쪽에서 견제할 수 있는 프랑스와 소련의 억지력이 약화되었고, 동유럽은 독일 팽창을 위한 앞마당이 되어갔다.

- Kissinger, Diplomacy,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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