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의 가믈랭 군사전략과 프랑스 외교? Le monde

1935년의 가믈랭 군사전략과 프랑스 외교?
- 대전략이란 무엇인가?
- 군사전략, 외교정책 그리고 국내여론의 기묘한 엇박자?

1935년 4월의 스트레자 전선의 결성으로, 영국,프랑스,이탈리아가 독일 견제를 위한 공동전선에 동참했다.

스트레자의 정신 속에서 같은 해 6월 프랑스와 이탈리아 양국의 참모본부 회담이 열렸다. 스트레자 외교를 군사정책으로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의 가믈랭과 이탈리아의 바도글리오가 참석했다.

프랑스의 대-독일 견제에서 이탈리아가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다. 가믈랭에게 이탈리아는 독일의 오스트리아 야욕 저지를 위한 전략에서 중요했다. 동유럽에서의 위기발생 시에 프랑스 원정군이 이탈리아를 경유하여 위기의 현장에 파병예정이었다. 이를 위해서 이탈리아는 관대한 조건을 제시하여 프랑스의 주변부 작전을 위한 전쟁 비용 삭감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35년 6월에 가믈랭은 독일이 중유럽을 침략할 경우, 이탈리아를 통해 프랑스군을 이동시킬 예정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협력없이 프랑스의 중부 유럽 개입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1) 

가믈랭의 프랑스군 전략은 이탈리아의 협력을 전제로 했다. 하지만 무솔리니의 아비시니아 침략 이후 프랑스 외교는 이탈리아 제재에 찬성하게 되었고, 이탈리아는 스트레자 전선에서 이탈했다. 여기에는 침략에 반대하는 프랑스 여론이 힘으로 작용했다. 

1935년 6월 이후의 프랑스에는 대전략이 부재했던 것 같다. 만약 프랑스의 대전략 목표가 독일 견제였다면, 프랑스군이 이탈리아를 경유해서 동유럽으로 파견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탈리아와의 스트레자 전선 유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국내여론을 의식한 프랑스 외무부는 아비시니아 침략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했고, 이는 프랑스 여론의 압력을 정책에 반영한 것이었다. 그 결과 프랑스는 군사전략과 외교정책의 모순 속에서 유럽에서의 독일 견제와 봉쇄라는 대전략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스트레자 전선의 유명무실에 주목한 히틀러가 다음 해인 1936년 3월에 베르사유 조약과 로카르노 조약을 모두 무시하는 라인란트 재점령의 모험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였다. 

1) Robert Boyce, Esmonde M. Robertson (eds.), Paths to War, 140-141.

-프랑스의 육군참모총장 가믈랭은 무능한 군지도자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변명의 소지는 가지고 있다. 1935년에 이탈리아와의 협력을 통해 만든 독일견제를 위한 군사전략을 무산시키는 것은 프랑스 외교부의 이탈리아 제재 결정 때문이 아니냐고 말이다. 

물론 독일 견제와 이탈리아 침략 규탄은 1935년에 프랑스가 추구해야 할 정책 가치이자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차악의 원리에 따라 더 작은 악을 선택해야 했다는 그것은 바로 전자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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