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외교정책은 누가 주도해야 하는가?" Le monde

"국가의 외교정책은 누가 주도해야 하는가?"

이것은 정책철학의 문제이다. 물론 헨리 키신저는 분명한 입장이 있다. 외교는 본인과 같은 국가의 핵심 엘리트의 영역이자 책임이며, 외교에 여론과 민주주의가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바람직하지 않다.

전간기 영국의 외교정책 역사는 하나의 예를 제공한다. 

1918년-1939년 동안 영국 외무부가 외교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 1914년 이전까지 영국 외교정책은 외무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전후에 영국 외교정책에 대한 내각과 각종 자문위의 영향력이 증가했다. 그들이 영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결정했다.

외무부의 힘을 견제한 또 다른 세력은 영향력있는 개인과 강력한 민간 단체들이었다. 그들은 대전의 비극을 1914년에 외무부가 주도한 '구태 외교' 탓으로 돌렸다. 

마지막으로, 두 명의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네빌 체임벌린의 영향 탓이었다. 두 총리는 외교정책을 총리실이 주도하게 만들었다. 물론 로이드 조지의 사임 이후 외교부 측의 반격으로 1937년 말까지 외무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증가한 시기가 존재했다. 커즌, 램지 맥도널드,오스틴 체임벌린이 외무장관을 하고, 에어 크로와 로버트 밴시타트가 외교부 상임차관을 맡을 당시에 외교부가 외교정책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37년 5월에 네빌 체임벌린이 총리가 되면서, 외교정책에 대한 다우닝가의 통제가 부활했다. 특히 1937년까지 외교부의 막후 실세였던 로버트 밴시타트를 물러나게 만든 것이 주효했다. 외교정책에 대한 전문관료의 통제를 상징하던 밴시타트가 제거되면서, 정책에 대한 외무부의 영향력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이것이 대전 이전의 평화의 마지막 시대의 영국외교에 의미한 것은 분명했다. 즉 체임벌린 집권과 더불어, 아마추어가 영국외교 정책을 구상하고 집행했다는 것이다. 이들 아마추어들이 영국 본토와 대영제국의 수호를 위한 , 이른바 '신외교'를 실천한 것이었다.

- B. J. C. McKercher, 'Old Diplomacy and New: the Foreign Office and Foreign Policy, 1919-1939', in Diplomacy and World Power , ed. Dockrill and McKercher, 80.

- 문재인 정부의 한일관계가 저점을 찍은 것도 위의 상황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ㅠ

조국이 페이스북에 죽창가를 올려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과시한 것은 아마추어적인 행동이었다고 평가한다. 



덧글

  • 프레디 2022/06/08 22:58 # 답글

    아베 신조도 수출규제 정책을 밀어 붙일 때 외무성쪽 의견은 듣지도 않았다니 대한 해협을 사이에 두고 두 아마추어가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해도 되겠군요.
  • 파리13구 2022/06/08 23:39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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