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이후 독일의 부상과 영국의 대응 전략? Le monde

1890년 이후 독일의 부상과 영국의 대응 전략?

비스마르크 실각 이후 독일의 야심은 유럽에서의 준-패권국 지위에 만족하지 못했고, 영국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영국 정책의 원칙들 중 하나는 유럽의 균형의 유지였다. 1890년 이후 영국의 외무장관들은 유럽 균형의 유지를 위한 대책에 대한 명확한 사상을 가져야 했다. 

육군 상비군이 소규모이며, 동맹이 없는 '영광스러운 고립' 상태의 영국은 대륙에 대한 직접 군사개입의 위협을 가할 수 없었다. 영국의 정치가와 육군과 해군은 독일의 서유럽 패권 장악 시도에 대해서 어떤 전략으로 대응해야 하는지의 문제에 직면했다. 전략 구상에서 해군파와 육군파가 대립했고, 논쟁 결과 영국전략의 중심축이 해군에서 육군으로 이동했다. 

-  John Gooch,The weary titan: Strategy and policy :Great Britam, 1890-1918, 280-281.

- 이것은 운명적인 선택이었다. 영국이 대규모 육군을 동원해서 유럽대륙에 군사개입한 제1차 세계대전은 충격으로 돌아왔다. 전후의 영국 엘리트들은 다시는 육군을 대륙으로 보내면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 믿음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 바로 네빌 체임벌린이었다. 그는 1939년 3월 히틀러가 프라하를 점령하여 유화정책이 실패한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 영국 육군의 재무장에 주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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